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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영상.방송]/우현의시

E021. 홍이씨께 _ 우현의시

by 김PDc 2014.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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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 당신안에 깃든 신의 영혼에게 경배드립니다.

 

노을이 지는 반곡리에서 당신을 생각합니다. 저 억새잎 너머 어딘가에 있을 당신은 잘 계신지요. 나 어느 새 흰 새치가 더 많은 오십줄의 나이에 서 있지만, 당신 또한 그만한 나이에 있게 됩니다. 개구리 밥풀처럼 떠 다니던 먼 그때, 터미널 찻집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당신의 그 뒷모습이 내내 가슴 시려와 여전히 아파오는 지금, 내 부질없음을 탓하기도 했지만, 어느 겨울 밤 내가 찾은 당신의 전화는 그런 분이 안 계신다는 말만 되풀이 한 채 그렇게 25년이 지났습니다. 가끔은 이곳이 아닌 먼 타국에 있을지도 몰라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나는 당신의 안부를 이렇게 묻게 됩니다. 그곳이 어디든 당신은 잘 살고 있을 겁니다. 점점 더 희미해져가는 기억은 당신 얼굴마저도 잘 그려지지 않게 되지만 만일 기쁘게도 당신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당신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복사꽃은 피겠지요. 첫 사랑처럼 너무도 쉽게 등을 보이며 멀어져가는 그 꽃잎들을 나는 또 어김없이 쳐다보겠습니다. 복사꽃 어지러이 흩날리는 봄이 올 때면 나는 늘 버릇처럼 한 번 쯤은 당신을 찾게 되고 평안하시길 바라곤 한답니다. 그래요 우리 살아온 나의 날들과 당신의 날들이 함께 수긍의 고개를 끄덕이며 잘 살아왔다고 서로에게 위안의 말들을 하며 언젠가 만날 수 있겠지요. 아주 오래 전 내 나이 스물 둘의 봄날, 나는 따뜻한 남쪽이 좋아 그 곳으로 갔었습니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 땅에서 하루하루를 단 한번 이고 마지막인 삶처럼 여기며 살고자 했지요. 그리고 한 사람을 만났고 그와 4년이란 청춘의 시간을 함께 했고 그 곳, 전주를 떠나며 그를 보내야 했습니다. 많이 아파했고 당신은 그의 친구이지만 그가 떠난 한 쪽에서 우리는 여전히 소식을 주고 받았습니다. 내가 가슴의 소리를 따라 긴 여행을 할 때도 우리는 간간히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만나곤 했지요. 당신이 지닌 사람사이의 아픔이 또 나를 아프게 했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더 성숙한 각자의 길을 보았습니다.


살아오면서 내 곁을 떠나간 사람들이 어찌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나란 사람의 정거장에서 몇 시간, 혹은 몇 일, 몇 년을 함께 잘 놀다가 때가 되면 흩어져 새로운 정거장으로 새 삶을 찾아 떠나가는 게 가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요. 그래서 내 정거장의 추억은 그것대로 예쁘게 내 안에 간직할 수 있게 됩니다. 낡고 비루해 보일지라도 한 때 내가 사랑했던 것들은 언제나 내 안에 푸른 선인장처럼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곳 반곡리에서 노을을 지켜 본지도 어느 덧 5년이 다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태전에 노을이 다르고 어제의 노을이 오늘과 또 다른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내가 온전히 받아들일 때 늘 아름다운 노을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아침이 매일 똑 같지 않은 것처럼. 당신은 당신만의 삶을 살고 계시겠지요. 나는 나대로의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강물로 흘러갑니다.


첫사랑처럼 너무 쉽게 떨어지는 밤 벚꽃을 보며 올 4월에도 나는 어김없이 당신의 안부를 또 묻습니다. 더는 묻지 않는 4월이기를 이제는 바랍니다. 찬찬히 살펴가며 사시기를.

 


홍이에게


평안합니까

黃砂가 지나가는 산 벛꽃나무아래 있습니다.

4월이 다 가고 이제 나와 다른 것도 사랑하게 됩니다.

마음이 다 할 때까지 살고 있지요?

한 바람이 다른 바람을 일으키고 또 다른 길을 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당신의 발도 시큰거립니까.

시큰거릴 때마다 등줄기 시린 꽃잎들이 떨어집니다

서른 셋 예수의 나이를 한참 지나고 흰 새치가 머리를 뒤덮어도

여전히 녹녹한 事緣은 남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마음이지만

당신께 부쳐드리고 싶었습니다.

남은 날들의 이파리들이 앞길에 저 黃砂처럼 흩뿌릴 때 기억합니다.

사랑이 있는 한 생명은 영원이고

삶은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기억합니다

내내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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