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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영상.방송]/기고

사진 찍는 변호사 이상인 _ 김 기자의 좌충우돌 인터뷰

by 김PDc 2015.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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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을 보며 한 사람이 떠올랐다. 80년대 신림동 시장 한편에서 순대철판볶음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했던 서울대생 ‘이상인’. 그를 처음 만난 때가 엊그제 같다. 서울대에 합격하여 지방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는 한때 민주화 항쟁의 선봉장에 서 있었고, 그로인해 도피생활을 하기도 했다. 후배들에게 정의를 외치며 386세대를 살았던 그에게 지금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지 묻고 싶었다.



변호사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지금까지 변호사를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학창시절부터 문학에 남다른 소질이 있으셨다고 들었는데요. 특별한 활동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습니까?

남다른 소질이라뇨. 가당치 않네요. 한때 소질이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 문학동인회 활동을 한 적이 있었죠. 제가 대성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한길문학동인회라고 시와 소설에 관심 갖고 창작활동을 하는 교내 동아리죠.

그때 4기 회장직을 맡았었는데, 지금은 35기가 넘어섰다고 해요. 대전에서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활동하고 있는 문학동인회로 알고 있어요. 방과 후 빈 교실에 모여 동인이 지은 시를 읽으며 합평회를 하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문학 활동을 하면서도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아울러 대학 입학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이나 부모님들께 해줄 말이 있다면.

굳이 비결이라 한다면, 국·영·수 기본과목 기초를 열심히 닦았던 것이 아닐까 싶네요. 기본과목이 탄탄하다 보니까 3학년 때는 다른 친구들보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부족한 부분이나 암기과목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또 하나는 집중력을 들고 싶어요.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한 시간을 앉아 있어도 집중력 있게 공부를 했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공부가 잘 안 될 때 과감하게 공부를 접고 운동, 독서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집중력은 학습의 질을 높입니다. 저도 고2 올라가는 딸이 있는데 요즘 아이들 보면 불쌍해요. 선행학습한다고 아이를 사교육시장으로 소몰이를 하더라고요.

아이들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중요해요. 말을 물가로 끌고 가더라도 결국 물을 마시는 것은 말 본인이잖아요. 학습동기를 찾아주고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 요즘은 자기주도학습이라 하더군요, 이것을 깨닫는 것이 핵심이라 생각해요.

대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그러니까 1980년대는 나라가 좀 시끄러웠잖아요?

그때는 어르신들 말대로, 놀고먹는 대학이었죠. 게다가 억압 정권에 맞서는 민주화 바람이 대학을 휩쓸었죠. 저 역시 중심을 못 잡고 그 열풍에 휩쓸려 버렸죠. 하하. 돌이켜보면 순수한 열정이 그립긴 해요. 하지만 정작 대학시절에 제대로 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교양이든 전공이든 좀 더 지식을 쌓았어야 했는데 말이죠.

대학생들이 사회현실 참여 때문에 학습을 도외시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 우리 어른들의 몫인데, 요즘 돌아가는 사태를 보면 과연 그런 꿈같은 시대가 올까 의문이 들긴 합니다.

경제학과에서 법학으로 전공을 바꾸신 이유가 있으셨나요?

전공을 바꾼 것은 아니고요. 시국사범으로 잠시 수형자 생활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진로가 좀 꼬였지요. 졸업 후 방황하다 1년 정도 대기업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전문직을 갖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직장을 그만 두고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 나이가 스물일곱 살이었죠.

사법고시 패스가 쉬운 일이 아닌데요.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게 힘들었어요. 고시원이나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직장을 다니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어요. 극복방법이라면 특별한 것은 없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죠. 비전공자라 대부분의 과목을 짧은 시간에 마스터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도 부족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버텼죠.



사진은 버리는 작업

재능이 참 많으신 것 같아요. 사진을 찍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제가 워낙 미적 감각이 없어요.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으면 항상 불만이었어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사진을 배워보고 싶었는데 2009년에 아내가 미국으로 파견 연수를 가게 되었어요. 그 당시 저는 매일 야근으로 에너지가 고갈돼 가고 있었어요. 재충전의 기회라 생각하고 무작정 아내를 따라 미국으로 갔죠. 그곳에서 영어도 배울 겸 현지에 있는 community college 사진학과에 입학했어요. 우리나라로 보면 개방대학교 정도 되겠네요.

사진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카메라가 사용된 것은 굉장히 오래 되었어요. 고대에도 어둠의 상자라 하여 천문관측의 도구로 사용해 왔고, 근대 들어서는 화가들이 회화의 윤곽을 뜨는 도구, 즉 네모난 상자를 통해 뒷면에 비춰지는 상을 이용하여 그림의 윤곽을 뜨는 도구로 사용 했고요.

그러다 뒷면에 비춰지는 상을 고정화시키는 재질이 개발되면서, 1838년에 프랑스 다궤르라는 사람이 ‘사진이 발명되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르죠. 그 이후 상을 고착화하는 소재로 필름이 개발되면서 사진이 확산되었고 그 반향으로 많은 초상화가들이 생업을 잃었죠.

처음엔 화가들이 사진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사진가들이 암실작업을 통하여 회화 느낌이 나는 사진을 발표하면서 서서히 예술로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그 이후엔 오히려 미술계에서 사진보다 더 사실과 같게 그리려는 미술사조가 나타나기도 했고요.

이처럼 사진은 미술사에도 큰 영향을 끼쳐 왔어요. 아직도 사진이 예술이냐에 대해 일부 반대하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저는 사진은 예술의 한 분야라고 믿고 있어요. 그것도 어느 예술보다도 대중적 생산과 소비가 왕성한.

스마트폰이 등장하고는 누구나 사진을 쉽게 접할 수 있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스마트폰 이전에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면서 사진은 완전 대중화되었죠. 그 이전 필름카메라 시절에는 사진을 찍고 난 후 인화라는 과정을 거쳐야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디지털 카메라 시대엔 사진을 찍자마자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잖아요.

예전 같으면 필름, 현상, 인화에 비용이 많이 들어갔지만 이젠 맘에 안 들면 삭제하면 그만이에요. 이 같은 편의성, 경제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사진은 대중예술로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이처럼 대중화되는 거 좋다고 봐요.

같은 피사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느낌과 생각을 가지고 찍게 되고 또 공유하게 되는 거잖아요. 저는 사진이 대중예술로서 자리 잡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사진을 남들보다 잘 찍을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면 공개해 주시겠어요?

저만의 노하우는 없고요. 굳이 말한다면 사진은 버리는 작업입니다. 회화와 비교한다면, 회화는 빈 캔버스에서 시작하여 무언가를 자꾸 채워 넣는 반면, 사진은 무언가를 버려야 하죠. 뷰파인더에 잡히는 것에서 표현하고 싶은 것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버려야 해요.

표현하고 싶은 주제에 가까이 다가가 close up하여 주변 배경을 아예 없애는 방법도 있고, focusing out 기법을 사용하여 원하는 주제만 또렷이 하고 주변 배경은 흐릿하게 하는 방법 등이 있어요. 이것저것 다 담으려 하지 말고 표현하고 싶은 피사체에만 집중하여 주제를 부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문학과 사진과 법을 많이 접한 분으로써 일을 하시면서 이 세 가지가 하나의 울타리로 상응할 수 있는지, 있다면 그 관계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좀 난해한가요?

글쎄요. 좀이 아니라 많이 난해하네요. 하하. 어느 것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요. 문학, 사진, 법은 모두 각각의 장르로 세상을 보거나 표현할 수 있거든요.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보는 시각인 거 같아요. 사람 수만큼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고요.

내가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도 중요하고 또 다른 사람의 시각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단 거죠.

물론, 문학이나 사진과는 달리 법에서는 때로 어느 시각이 이 시대에 적절한 것이냐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겠지만요. 좀 난해했나요? 아님 동문서답이었나요? 하하하.



법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요?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요? 또 법조계 일을 하면서 후회했던 일은 없으신지요?

변호사 사무실 개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채 때문에 찾아온 여성이 있었어요. 2천만 원을 빌렸는데 지금은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1억이 넘는대요. 저는 그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자세히 설명을 해보라고 했더니 그냥 가버리는 거예요.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처음엔 카드 돌려 막기로 시작한 것이 사채에 손대게 되고 악덕 사채업자에 걸리면 그처럼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그때는 잘 몰라서 제대로 법적 대응방법을 알려 주지 못했는데요. 그때 깨달은 것이 변호사는 법적 지식만 알아서는 안 되고, 사회현실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럼 이 길을 잘 선택했다라고 생각 하실 때는 언제이신지요?

재판에 승소해서 의뢰인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죠. 그리고 기존 판례를 뒤집는 판결을 받아냈거나 나름대로 고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논리로 진행한소송이 좋은 결과를 얻을 때죠.

법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주관적인 정의를 내린다면? 우리가 보통 ‘정의의 여신’ 비유를 하잖아요. 그런 일반적인 것 말고 변호사님의 개인적인 견해는 어떠신지요?

법은 따뜻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건의 해결방법이 경우의 수처럼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재판은 기계나 컴퓨터가 아닌 사람이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사건의 해결을 법에 규정된 대로만 해석하지 말고 따뜻한 가슴을 담아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실질적인 공정성, 공평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요즘 시국을 볼 때 여러 가지 사건, 어떤 사건이라고 특정하지는 않겠지만 사법부의 법 집행에 다소 불만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재벌기업 총수 문제 등에서 보듯이 사법부가 국민의 법 정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판결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죠. 국민들의 의식도 많이 높아지다 보니 사법부의 법 집행에 불만을 품고 구체적 행동으로 옮기는 사건도 발생하곤 하는데요. 제 사견으로는 사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진 못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또 하나 언론도 문제예요. 올바른 비판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간혹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피상적으로만 분석해 보도하는 경우도 많아 국민들이 호도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어떤 땐 기사의 관심도를 높이고자 일부러 사건의 본질을 외면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생각함으로써 진정한 개선방안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법 하면 무겁잖아요. 일반인은 접근하기조차 두려워하고 그런 분들께 한말 씀 해주시죠?

법. 어렵지 않아요. 대부분 상식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어요. 요즘 다들 사소한 다툼이라도 생기면 ‘법대로 하자’ 그러는데 상식적인 차원에서 해결 가능한 일이 대부분이에요.

앞으로도 글이나 사진 작업도 계속 병행하시는 건가요?

항상 고민되는 문제예요.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열정 문제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변호사 생활을 하는 동안은 감을 잃지 않을 정도로만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고요. 당분간은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니까요. 60대쯤이면 경제활동 부담도 적어지고 시간의 여유도 생기겠죠? 그때 가서 열심히 해 보려고요.

마지막으로 사무실 자랑 부탁드립니다. 요즘은 자기 PR 시대이니 뭐 마음껏 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서울 서초동에 있는 법무법인 정세라는 로펌에서 파트너로 일하고 있어요. 변호사만 40명에 직원까지 포함하면 80명이 넘죠. 서초동 인근에서는 가장 큰 로펌이죠. 법원 판사 출신, 검찰청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많다보니 어떤 분야든 종합적인 법률서비스가 가능합니다.

어떤 사건이라도 그에 적합한 변호사들이 팀을 이뤄서 사건을 처리하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이고 특화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아무튼 믿고 맡겨 주시면 좋을 결과 갖다 드립니다. 하하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앞으로도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훌륭한 변호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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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기 위해 학생들이 돌을 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민주주의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386세대의 암울한 시대적 배경은 역사에 상처처럼 각인되어 있다.

그들은 이제 대한민국 사회를 이끄는 견인차가 되었다. 어떤 이는 시장에서, 어떤 이는 기업에서, 어떤 이는 아직도 1980년대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서울대생, 낡고 남루했던 이상인 변호사. 그가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변화되지 못한 사회적 모순과 문제를 글이나 사진에 남기려 하는 이 시대 지식인의 감각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1980년대 그가 꿈꿨던 세상이 조금 더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본 글은 '월간地酒' 2015년 3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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