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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영상.방송]/투데이詩뮤직

E002. 초이 - 백동규 詩 _ 투데이詩뮤직

by 김PDc 2016.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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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E002. Fortaleza


초이


생각해보니

첫인상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사람은 너밖에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여드름 꽃이 핀 너의 얼굴보다

반달을 한 너의 눈모양, 입모양이 참 인상적이었다.

아마 나 또한 너를 따라 반달마냥 웃고 있었을 거다.

그날의 기억 속엔 네가 입은 옷뿐만 아니라

네가 한 분홍 허리띠, 분홍 구두, 곱슬곱슬 머리 모양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고,

우리가 갔던 곳에서 나누었던 말귀말귀들이

아직도 내 귀를 간지럽히곤 한다.

그날 만나 그날 사귀고

3년 지나 자연스럽게 결혼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철없는 결혼이었다.

모아 놓은 돈 한 푼 없는 나에게 반지 하나 받고

불평 없이 시집온 너나

신방 차리면서도 침대 하나 사지 않고

쓰던 침대 그대로 쓰게 했던 나나…

그래서 몇 년 후 냉장고가 고장 나 중고로 사자 했을 때

너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는지도 모르겠다.


결혼하기 3개월 전 직장을 관뒀을 때

울먹이던 너의 얼굴이나,

그때의 눈물 방울방울들이 가끔은

커다란 고드름마냥 가슴 위로 쾅쾅 떨어져 내린다.


자고 일어나면 바닥에 깔아놓은 신문지가 축축이 젖어있고

창문 앞 무덤에선 고양이들이 앙칼지게 울어대던

화장실도 없는 창고 같은 방에서 살던 나는

언젠가는 그렇게 하루를 사는 것조차 싫어서

부산행 기차에 몸에 싣고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이단짜리 맥도날드 햄버거와 함께

지루함을 끝내려고도 했지만,


너를 만난 이후로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날씬했던 허리와 배가 이제는 걷기 힘들 정도로 불러서

장모님은 배 사장, 배 사장 하고 농을 던지시지만

너의 불룩한 배조차도 내 눈에는 아름다운 곡선이다.

손으로 쓰다듬으면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뱃속에서

느껴지는 작은 움직임에

너를 처음 만났을 때마냥 설렌다.


백동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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