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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4

오타의 달 오타의 달 글자의 점 하나가 서로를 혼란하게 하고 신융장 숫자의 콤마 하나가 자사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첫 직장의 실무가 되었을 때 퇴근 후 북창동 포장마차에 앉아 손바닥만 한 돼지 주물럭 연탄 구이와 소주 한 병이 모두 오천 원 어치인 계산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에서 딱 오천 원어치의 스트레스를 찢어 버렸었다 가끔 마천루에 걸린 달을 볼 때면, 수 없는 오타의 하루가 휘청거리는 길 보름이 되기까지 살이 오르며 둥글어지는 저 달에서 품어지는 온유의 패러독스 삐끗하는 일은 바로 서기 위한 용서라고 내가 네가 되게 하던 달나라의 오타들을 노랗게 분사하고 있었다 - 김주탁 - 2019. 5. 28.
아리아리 [퓨전포차] 아리아리 [퓨전포차] 042-582-5821 대전광역시 서구 도산로 202 2019. 4. 13.
'또 만나요' _ 나이트 죽돌이 이야기 나이트 죽돌이였던 80년대 말 호진이와 나는 코파카바나[Copacabana]를 올라가기 전 포장마차에서 소주 각 1병씩을 섭취하곤 했다. 주머니가 얇은 탓에 약간의 취기가 비싼 맥주를 조금만 마셔도 그 효과를 극에 달할 수 있다는 절약 기능의 잔 대가리를 굴린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고등학교 때 내 짝꿍은 대전에서 유명한 스파크[Spark]라는 댄스팀의 일원이었고 녀석은 로봇 댄스 전문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수업시간 또는 그 외에도 나는 무료? 강습을 받았고 매니저 아닌 매니저 역할을 했다. 사실 매니저라기보다는 그냥 따라다녔다. 식당집 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 전설처럼 나 또한 초등학생들에게는 우상이 되고 전문가들에게는 시다바리 유치원생이 되었다. 나의 화려한? 전력으로 나이트에서 나름의 유명세를 탔.. 2017. 11. 11.
포장마차에서 눈물을 흘린 까..닭 이제는 아련한 기억으로 남는 포장마차. 홍명상가 귀퉁이를 돌아 줄줄이 늘어선 포장마차를 들어서면 구수하면서도 흥겨운 홍합탕 내음과 고갈비의 약간 비릿하면서도 부드러운 살갗을 부끄러워 빨간 양념을 살짝 걸치고 주인 아주머니의 손길을 타고 나온다. 비라도 내릴라치면 포장지붕위로 작은 운율에서 위대한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음악이되어 한잔 한잔 술잔속으로 빠져드는 내 자신을 보게 된다. 20수년전의 이야기다. 퇴근길 여직원들의 유혹에 잠시 가던길을 멈췄다. 오정동 농수산 시장을 지나기전 우회전해서 골목길을 굽이도니 작은 포장마차 촌이 있고 12시를 한참 지나서 인지 손님들은 없었다. 그중 매운 닭발로 유명한 끝집으로 들어섰다. 충청도 사투리가 정갈스런 주인 아주머니의 인사로 자리에 앉아 엄청매운 닭발을 주문한다... 2010.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