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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영상.방송]/김주탁의 일詩일作

어머니의 총각

by 김PDc 2019.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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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총각
- 옥천 꽃동네에서


다가갈 수 없는 퇴행의 섬
울컥 속 삼키는 눈물의 피는
고들빼기 맛이 나기도 한다
건너오는 흐린 눈빛에 억장 무너져
건너가는 안부의 자음 목 가시로 찔리는
나는 오십 먹은 총각이다
달빛 꺼진 묵지의 바다
새까만 머릿속에서 총각이었다
보세요 며느리 이쁜 며느리 
수십 수백 번 귀 못 박아 드려도
수천 수만 개 옹이진 가슴에 헛 박히고
불러 보세요. 아가 착한 새아가
수십 수백 개 귀 못 빼내 드려도
죽기 전에 여의어야 하는 데 
너 하나 여의고 가야 할 텐 데
수천 수만 번 삼킨 응어리에 겉돌고 
꿈속에서나 다시 말해 드릴까
꿈속에서나 참던 눈물 보일까
둘 같은 셋으로 햇살 한 줌 붙잡고 나와
깜부기처럼 씹혀 대는 기억들 솎아내는
휠체어와 한몸 되신 어머니  
바퀴따라 걷는 매화리 갈꽃 길에 
옛 기억마다 단풍 곱게 적시어 놓고
묵지의 바다 하얗게 탈색되던 날
울먹 내뱉는 며느리의 눈물에 두고 가신
빈 집 같은 치매의 그림자 
나는 수인으로 갇혀
끝내 어머니의 총각으로 무기 투옥되었다


- 김주탁 -

* 깜부기 - 깜부깃병에 걸려 까만 가루 덩이가 된 곡식의 이삭
* 갈꽃 - 가을에 풀어내는 갈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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