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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3

구름에 앉아 구름에 앉아 어느 찢어지게 가난한 선비 집에 살던 배고팠던 파리 한 마리가 이른 봄날 개울 건너 내로라하던 양반집 잔칫날에 날아가서 종일 산해진미를 빨아 먹고 돌아가던 길 이길 수 없던 배부른 졸음으로 여울 물살에 반신을 숨긴 따뜻한 징검돌에 무거운 몸을 내려앉아 춘몽을 꾸던 사이 겨울잠을 깨어난 개구리 혀끝에 날름 감겨 버렸다 배고픈 천적이 배부른 꿈을 삼키고 뒤늦게 땅굴을 기어 나온 춘사 한 마리가 개구리와 눈이 딱 마주치는 사이 향기로운 봄꽃이 막 피고 있더이다 소백산 하행 길에 잘 우려진 야생 세작을 건네던 땡초에게 즉흥 잡설을 씨부렸더니 아무 대꾸도 없이 녹차나 서너 잔 마시고 내려가라 하더라 산은 두고 봄꽃은 가져가라 하더라 - 김주탁 - 2019. 7. 3.
풀 소가 풀을 뜯고 있다 쇠 등에 파리가 앉아 탐식중이다 모기가 날아와 쇠파리의 피를 빨고 있다 풀의 피를 빨고 있다 풀은 주검으로 돌아온 녀석들을 풀뿌리로 빨아들이고 있다 붉고 뜨거운 피는 차갑고 푸른 엽록의 변환이었으니 그 엉킨 순환의 에너지가 햇볕과 비와 바람과 시간의 교감에서 자란 풀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 김주탁 - 2019. 6. 3.
파리도 팔자대로 산다 파리도 팔자대로 산다 중앙로 삼계탕집에 사는 파리는 윤기가 좔좔 흐르고 통뚱했다 대패 삼겹살집에 살던 파리도 기름기가 좔좔하니 뚱통했다 그놈들에게도 팔자가 있었을까 파리 날리는 식당에 살던 파리는 파리해진 파리가 되어 어쩌다 손님이라도 들어 오면 얼른 테이블 위로 날아가 머릴 조아리고 죽어라 두 손을 비벼대는 것이었다 어서옵셔! - 김주탁 - 2019.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