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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5

이끼 이끼 해가 뜨는 시간이 되면 햇살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뭍으로 오른 초목들은 물에 불은 몸통을 훌쩍 키워 내고 널찍널찍 잎을 넓혀 나갈 때 꽃으로의 진화는 서툰 실수였을까 미완에 머문 불구의 몸이라도 좋았다 초록 하나의 힘이라도 바닥에 바짝 엎드린 힘줄인 듯 붙잡고 가끔 풀의 정체성을 혼돈 하는 날이면 민꽃의 이끼는 젖은 바위라도 헛뿌리로 모질게 끌어안고 그 억측의 생김으로 원시의 꿈을 꾸었다 싱그러운 저 숲의 밑바닥을 지키는 소박한 욕심의 꿈을 보라 늘 푸른 원시의 백성들을 보라 - 김주탁 - * 민꽃 -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자나 홀씨로 번식하는 식물 2019. 5. 21.
구절초가 구절초에게 구절초가 구절초에게 배와 내가 땅 속 뿌리로 이어진 지 오래니만큼 염치없지만 부탁을 좀 해야겠네 철없는 이월 햇살이 여물다고해도 얼마나 여물 수 있겠나 그 햇살에 더러 언 땅이 녹더라도 내 몸을 천천히 좀 밀어주게 겨우내 움츠렸다 줄기까지 마른지 오래지만 꽃을 피워내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남아 밀리는 그 끝이 아프고 아프다네 꽃 보던 시절 우악스런 낫질에 목이 잘리고 한 다발씩 묶여서 빈 처마에 매달렸다가 약탕기에서 끓어 넘치는 게 나을 뻔했다고 속에도 없는 혼잣소릴 되뇌게 해서야 쓰겠나 성하던 목숨도 시들고 비틀리다 보면 혼자 서 있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니라네 봄 눈 녹으면 스스로 몸 끊고 누울 것이니 후배님 몸도 생각하면서 천천히 밀어주게 엄살이 아니라네 그대도 한 번의 봄을 남겨두고 있지 않은가 -.. 2019. 5. 9.
풍경 풍경 회의는 오후 세시에 열린다고 했다 유리창을 뛰어 넘은 햇살이 회의실 바닥으로 떨어지며 소집을 알렸다 모이는 사람들은 순서가 있어 생각이 많은 이가 생각이 없는 이보다 먼저 왔다 회의가 생기는 회의일수록 눈치껏 끄덕이거나 혹은 눈치를 채지 못하게 끄덕끄덕 거렸다 알 만한 상황이고, 알 만한 사람만 참석했는데 예상과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 회의가 좌우로 튀다가 진보의 햇빛과 보수의 눈빛이 햇빛과 눈빛을 서로 바꾼 것이다 별일 없었다고 수습은 했지만 눈곱만큼도 관련 없는 햇살이 멱살을 잡혔다 늦게 와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이들 때문이라고 회의실 구석 있던 온풍기를 타고 소문이 돌았다 햇살이 억울한 오후였다 - 이국형 - 2019. 5. 9.
신록 신록 꽃눈은 꽃을 밀어내고 꽃은 잎을 끌어 올리던 운동회처럼 떠들썩했던 사월의 할례여 파발마처럼 달려오는 오월이 허공에 서서 휘적거리는 푸른 숨소리 저 잎 하나 바람에 흔들리기까지 저 잎 하나 햇살에 반짝이기까지 저 잎 하나 싱그러운 음표가 되기까지 사람의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나무는 뿌리에서 울고 또 울었다 - 김주탁 - 2019. 5. 1.
가을 수확을 기다리며...들판에서 2 - 들녘의 생명들... 들녘을 거닐면 새삼 알 수 없는 기운들이 몰아친다.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살포시 고개를 내미는 자연의 숨소리 어쩌면 이 모든 기운의 복합으로 삶은 풍요로운지도 모를 일이다.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한 인간이... 2009.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