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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료]/say no의 가르침

미래를 미리 계산하지 마라

by 김PD 김PD씨 2009. 5. 10.
19세기 말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껭은 '자살론’에서 자살을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에 통합되지 못했기 때문에 소외감이나 우울증으로 하게 되는 자살(이기적 자살), 자신이 속한 집단에 지나치게 융합 결속되어 집단을 위해 희생적으로 하는 자살(이타적 자살), 개인이 사회에 대한 적응이 갑자기 차단, 와해되면서 삶의 기준을 상실할 때 발생하는 자살(아노미anomy 자살)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살은 아마도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 자살이 혼합된 것인 듯 싶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서두로 꺼낸 것은 내가 20대 초에 그런 경험이 세 번 있기 때문이다. 약을 먹기도 했지만 며칠 후 깨어난 적도 있고 손목에 면도칼을 깊게 긋기도 했는데 깨어보니 병원 응급실이었고 그 덕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보내지기도 했다( 혹시라도 세이노 행세를 하며 사기치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왼쪽 팔목에 길이 6 cm , 4 cm 짜리 칼 자국 두개가 나란히 있다. 면도칼로 그었더니 피가 졸졸 흘러 다시 팍 그었기에 칼 자국이 2개가 되었다. 그걸 확인하면 된다. ㅎㅎ )

우울증에 걸렸던 것 아니냐고?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극단적으로 우울해진 사건은 군 제대후 압구정동에서 일어났다. 우연히 그곳을 부자집 여자 친구와 지나가다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결혼 후 어떤 곳에서 살고 싶으냐고 말이다. 그녀의 대답은 “얼마 전 결혼 한 막내 언니가 20 몇 평에서 사는데 좀 좁게 느껴지므로 자기는 30 평 정도가 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 동네 아파트 가격을 알아 보았더니 30평형은 커녕 가장 작다는 20 몇평형 아파트의 전세 조차도 나로서는 평생 못 가질 것이었다. 남산 꼭대기에서 바라다 볼 때 수없이 널려 있는 그 아파트들 중 정말 단 하나도 내 것이 된다는 것은 정말 영원히 불가능해 보였다.그게 벌써 근 30년 전 이야기이다.

십 몇 년 전 음향기기 사업을 했을 때,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아 출신의 한 젊은 직원을 고층 건물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가 밤거리를 보여 주면서, “저기 저 성냑곽 같은 수많은 아파트들 중 네가 들어가 쉴 곳이 하나도 없어 보이지?”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내가 과거에 그랬듯이 그 역시 같은 생각에 절망하고 있었다(어쩌면 당신도 강남의 수많은 아파트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절망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는 내 밑에서 3년 정도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배웠고, 그 뒤 독립하여 줄곧 용산에서 1인 비즈니스를 하여 왔는데 5,6년 전 결혼도 하고 아파트도 장만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아직도 용산 전자상가에 있다. 지금 내가 당신에게 하려는 이야기는 건물 옥상에서 수많은 아파트 불빛들을 바라보며 바로 그 직원에게 내가 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하면 된다”고 말하였지만 나는 도대체 할 것이 없었다. 뭘 하면 된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군 제대후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며 대학생도 아니었고 홀로 세상에 던져진 가난한 청년에게 “하면 된다”는 말은 정말 사기나 다름 없었다. 아침 햇살을 가슴 벅차게 안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는 지긋지긋한 가난이었다. 라면 살 돈도 없어서 라면 스프만을 얻어다가 양은 냄비에 물을 붓고 연탄불 위에 끓인 뒤 거기에 다 식어 빠진 밥을 김치도 없이 계속 먹어 보아라. 무슨 희망이 있다고 살 맛이 나겠는가.

그 시절의 나에게 "하면 되는" 것이라고는 뜬 구름 잡는 책들을 책방에서 선 채로 다리 아프도록 읽는 것과 마스터베이션 뿐이었다. 그나마 미스터베이션이라도 되었으니 다행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발기가 안 되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결국 절망감,고독감,외로움,열등감,상황도피,삶의 기준 상실 그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자살을 생각하였고 그것이 거듭 실패하자 "이 좃 같은 세상에서 이왕에 살아야 한다면, 내 팔목에서 쏟아진 피보다 더 진하게 살아보자"고 결심한다. 그리고 은연 중에 "피보다 진하게 살자"가 나의 좌우명 비슷하게 자리잡았다.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증에 걸려 자살충동을 느끼면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지금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과거에는 중증의 우울증 환자인 경우 머리에 강한 전기 쇼크를 주어 잠시 죽였다가 실험실 개구리 뒷다리 처럼 온 몸에 발작이 일어나면서 얼굴이 보라빛으로 변하면 다시 살려내는 그런 치료법이 종종 사용되었다(그런 장면을 본 나는 정신과 의사 앞에서는 명랑한 척 하여 풀려났다.ㅋㅋ).

23살의 어느 우울한 봄날이었다. 다시 봄이 왔을 때 나는 남의 집 차고에서 살면서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부터 시작해서 미군 부대 물건 판매 등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그리고 28살의 어느 여름날 나는 허름하지만 마당까지 있는 집과 자가용을 처음 샀다. 융자를 낀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렇게나 불가능하게 여겼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하지만 1년 후 나는 그 재산을 사업상의 이유가 아닌 개인적인 이유로 몽땅 날렸고 빚을 졌지만 3년 후 다시 일어섰다.)

살다 보면, 해도 해도 아무것도 안될 것 같이 보일 때가 있다. 어떠한 대안도 보이지 않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적인 때가 있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실망,좌절이 절망 속에서 계속 쌓이면 자살의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경우 자살은 함부로 저지르는 의미가 없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이 처한 고통이나 위기상황, 상실감 등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자살이 그런 탈출구였다.

그러나 로버트 슐러는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한다. 떨어지고 있으므로 하늘을 향해 날아 볼 수는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떨어지던 중 비쩍 마른 두 팔로 온 힘을 향해 세상 속으로 날갯짓을 시작하였을 뿐이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는 말을 그래서 나는 좋아한다. 추락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날개짓을 할 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절망의 골짜기에는 밑바닥이 없다. 아무리 깊이 떨어져도 우리를 산산조각으로 부서뜨릴 절망이란 이 세상에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를 파괴시키는 것은 우리 자신일 뿐이다.

마약 중독자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 '트레인스포팅'에서 주인공 마크 렌튼은 이렇게 말한다. "삶을 선택하라. 직업을 선택하라. 미래를 선택하라. 가족을 선택하라. 빌어먹게 큰 텔레비젼을 선택하라. 세탁기, 자동차, CD 플레이어, 전동식 깡통 따개를 골라라. DIY제품을 고르고,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에 나가 회개하는 삶을 선택하라, 빌어먹을…. 하지만, 내가 왜 그런 것을 원해야 하지?(But why would I want to do a thing like that?)"

렌튼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비웃는 듯 보이지만 그의 독백 속에는 학벌이나 돈,능력도 없으므로 평범하게 살래야 살 수도 없지 않느냐는 절망이 근저에 깔려있다. 그는 대안으로 마약을 선택하였을 뿐이다.

'트레인스포팅'은 영국에서 기차가 처음 생긴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생긴 말로, 사람들이 기차역 플랫폼에 모여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의 번호를 맞추는 게임을 뜻한다. 이 영화의 극작가 존 호지는 "이런 게임을 하는 사람들, 즉 트레인스포터는 혼돈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행동 양태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것일 수 있으며 이는 영국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현재를 사는 모든 젊은이들의 모습"이라고 하였다. 결국 '트레인스포팅'은, 삶은 우리에게 달려오지만 우리는 삶의 번호를 알지 못하며 다만 번호를 맞추는 게임을 할 뿐이라는 의미를 던져 준다.

우리는 왜 절망하는 것일까? 미래의 상황을 현재의 처지에 비추어 미리 계산하기 때문이다. 지금 일류대를 못 다닌다고 해서10년 후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금의 빚을 5년 후에도 못갚을 것이라고, 지금의 봉급으로는 평생 남들처럼 못 살 것이라고 미리 계산하여 체념한다. 지금 가난하므로 평생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미리 계산기를 두들겨 대면서 미래의 삶에 절망적인 번호를 매기고 만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이러저러하므로 5년후, 10년후에도 이러저러할 것이기에 희망이 없다고? 너무 계산이 빠른 것 아닌가? 점쟁이도 자기 미래는 모르는데 어떻게 감히 신의 영역인 미래를 스스로 투시하고 미리 계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부자가 되려면 미래 방정식에 지금의 처지를 대입하면 절대,절대,절대,절대 안된다. 결코 그런 짓을 하지 말라. 트레인스포팅 게임처럼 우리에게 달려오는 삶의 번호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논두렁에서 군사를 일으켜 일약 군왕이 된 자가 있는가 하면 시장 거리에서 춤추던 무희가 하루 아침에 황후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였지 않은가. Don’t cry for me Argentina 의 주인공 에바 페론 역시 술집 종업원에서 아르젠티나 대통령의 영부인이 되지 않았던가.

그렇게나 절망적이었던 내가 부자로 살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흔히 이야기 하듯 사람 팔자 시간 문제이다. 그러므로 미래를 미리 계산하여 절망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저 이 순간부터 당신의 미래 언젠가에 무슨 일인가가 새로 일어날 수 있도록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하라.

절대로 “내가 이걸 배워서 어디다 써먹겠어?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 하는 따위의 생각은 추호도 갖지 말라. 그것 역시 미래 방정식에 현재의 시간을 대입시키는 어리석은 짓이며, 패자들이 즐겨 사용하였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단 조건이 있다. 뭘 배우던지 간에, 뭘 하던지 간에 미친 듯이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하여라. 그렇게 할 때 미래는 그 암흑의 빗장을 서서히 열어주기 시작할 것이며 조만간 그 빗장 너머에서 비쳐지는 강렬한 태양빛 아래에서 당신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이미 그렇게 몇 년째 살아 왔음에도 변화가 없다면 당신은 그저 삶의 번호를 잘못 찍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었을 뿐이다. 그 잘못된 길에서 절망하지 말고 빨리 깜박이를 키고 길을 바꾸어라. 내 말을 믿어라. 거기서 새 삶이 무섭도록 빠르게 달려온다.

정말 정말 그렇게 되느냐고?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하나만 이야기 하자.

신문에 컬럼을 기고를 할 당시, 절망감이 가득찬 독자로부터 메일을 계속해서 받았다. 이른바 괞찮다는 대학의 인문학과를 나왔지만 이혼하여 혼자가 된 상태에서 뚜렷한 기술이나 직업도 없는 30대 초의 독자였다. 그저 막연한 생각으로 약대나 한의대에 다시 가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였고 게다가 중고생을 부업 삼아 가르치며 모은 얼마 안 되는 돈 마저 주식투자로 다 날렸지만 몰락한 집안을 이끌어 가야 하는 처지였다. 답변 메일에서 나는 생각의 방향전환을 강조하면서, 부업 삼아 하던 과외 일에 미칠 것을 권유하면서 프로가 되는 법을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알려 주었고 그 독자는 내 지시대로 하겠다고 하였다(나는 내게 메일을 보내는 모든 독자에게 똑 같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절대로 나에게서 개인적인 친절함은 기대하지 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즉각 내 말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머뭇거리면서 내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의 질문들은 정확히 표현하면 궁금한 점들이 아니라 안달이었고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과연 세이노 말처럼 과연 될까”하는 끊임없는 의심이었다.

왜 사람들은 내가 이미 실제로 경험한 것을 말해 주는데도 믿지를 못할까? 정말 이러한 의심은 미래를 미리 계산하여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가난한 자들의 공통적 특성이다. 승자는 먼저 달리기 시작하면서 계산을 하지만 패자는 달리기도 전에 계산부터 먼저 하느라 바쁘다(유대경전에 나오는 말인데 정말 진리이다).

미래를 미리 계산부터 해보려는 그의 태도에 나는 짜증을 엄청 냈으며 결국 그는 내가 제시한 방법론을 받아 들였다. 1년이 지나자 그의 예금액은 수 천만원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채 못 되서 그 금액은 2억원이 되었고 거기서 다시 6 몇 개월이 지나자 그가 내게 보고한 예금액은 3억원에 달하였다. 물론 내가 아주 약간의 재테크 조언을 해 주기도 했지만 그는 더 이상 내 조언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조언 중 하나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에서 나온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고? 그 독자의 프라이버시와 세무서 때문에 안 된다. 내가 꾸며낸 이야기 아니냐고? 야, 이 닭대가리야!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한두명인 줄 아느냐? 쯧쯧.

sayno@korea.com , http://cafe.daum.net/saynolove 에 2004년 3월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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