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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를 받지 말라
미국투자회사 칼라일 그룹 서울 사무소의 한국계 미국인 직원이 서울에서 "왕처럼 살고 있다"고 떠벌리는 메일을 친구들에게 보낸 사건이 2001년 5월에 있었다. 문제의 직원은 미국 국적의 20대로 1999년 7월부터 2001년 4월 까지 미국의 세계적인 증권사 메릴린치에서 일하다 5월에 칼라일 그룹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서울 근무를 해왔다. 서울에 온 지 불과 10여일 만에 그는 미국 친구들에게 한국의 접대문화를 들춰가며 호화판 생활을 자랑하면서 "여러 은행의 임직원들로부터 거의 매일 골프와 저녁 술대접 등 향응을 받고 있다”고 메일을 보냈는데 , 그 메일은 메릴린치 증권사를 비롯한 뉴욕의 투자회사 직원들로 급속하게 번졌고 결국 칼라일 본사에 까지 알려져 사표를 냈다는 것이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내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 "불쌍한 은행 임직원들…." 은행에서 접대를 하여야 하는 위치에 있다면 나이가 적어도 40대는 되었을 텐데 새파랗게 젊은 20대를 접대하느라 속이 뒤틀려도 엄청 뒤틀렸을 것 같아서 였다.
사업상의 모든 접대는 대화를 통하여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나의 의견 및 내가 팔고자 하는 상품이나 용역에 대해 부연 설명하고자 하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업무 중에는 서로 할 일이 있다 보니 일과 후에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하면서 그런 시간을 마련한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대부분의 접대는 상대방과 이른 바“인간적으로 친하게”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여기서 “인간적으로 친하게” 된다는 말의 의미는 십중팔구, 상대가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는지 무슨 노래를 좋아하는지를 파악하면서 젊은 여자 애들 끼고서 상대방 비위 맞춰가며 술 쳐 먹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접대의 정점은 상대가 여자와 2차를 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차라리 그냥 창녀촌으로 가라).
상대방에게 온갖 아부를 다 하면서 포주 노릇을 하는 이런 식의 접대를 관행으로 여기지 않는 집단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종교계 일부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계는 물론이고 학계(초중고등학교와 대학도 물론 포함된다), 예술계(특히 미술계), 언론계(신문 방송 잡지 모두 포함), 의료계, 법조계, 연예계, 금융계, 군인 집단, 공무원 집단, 공기업(정말 기가 막히는 곳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민간 기업(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마찬가지이다) 등, 사회 전 분야에서 그런 접대를 한편으로는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받는다.( 참고로 대한상공회의소가 181개 기업을 상대로 “접대와 매출의 상관관계”를 물었을 때 응답자의 16%는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고 68%는 “다소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영향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불과 16%에 불과하였다.)
내가 장사, 사업을 하면서 부딪힌 갈등 중 대표적인 것이 이 뒤틀린 접대 관행(접대 문화? 그게 문화냐? ) 이었다. 내가 파는 물건이나 용역이 가격과 품질에서 남들 것 보다 우수하다면 당연히 상대방이 구입해 줄 것으로 알았는데 세상이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가격은 비싸고 품질은 떨어져도 요령만 좋으면 팔아 먹을 수 있는 게 이 세상이었고 그 요령이란 것은 다름 아니라 구매 결정자를 이런 저런 방식으로 구워 삶는 것이었다.(“구매결정 과정을 파악해라” 항목을 참조하라.).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상대방이 내 애인이 아닌 이상,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등을 미리 알아 내서 상대로부터 호감을 받아내는 것을 아더메치한(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유치한) 행위라고 단정짓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나는 룸싸롱에서 거래 상대방과 술독에 빠진 뒤 젊은 여자와의 섹스를 주선해주는 것을 개지랄 떤다고 생각하여왔지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과정으로 여긴 적이 전혀 없다. 순전히 이해 관계로만 만난 사람들 앞에서 친한 척 하면서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동백아가씨 노래에 손뼉을 치고, 신날 것도 없는데 춤도 같이 추어야 하는 것이 나는 싫다. 그런 사람들과 술잔을 머리 위에 터는 짓도 싫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짓도 싫다.
내가 그런 접대를 한 것은 "술 한잔 사야 되지 않느냐"고 면박을 주는 공직자들 상대였는데 지난 20여년간 예닐곱 번은 된다. 내가 골프를 안 배운 것도 공무원들 눈치를 보느라 일요일 마다 골프장에 끌려 나갈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아서 였다. 하지만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내 생애 단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그런 접대를 한 적이 없다.
나는 도대체 그런 식의 지랄을 접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의심스럽다. 자존심도 없고 배알도 없다는 말인가. 당신 자신이 한심한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렇게 지랄 아양 떨면서 돈을 벌어 정승처럼 쓰겠다고? 자~알 해 봐라.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에 접대 하는 거라고? 영업상 필요하다고? 꼴갑 떨고 있네. 내가 볼 때 그런 지랄 수준의 접대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핑계 김에 같이 즐기려고 하는 자들일 뿐이다. 이런 부류들은 언제나 접대비 규제에 대하여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고 목청을 높이거나 별의별 핑계를 다 끌어당기며 반대한다. 그들은 회사 돈으로 골프를 치고 룸싸롱에 다니는 것을 폼 난다고 여기며 출세한 징표로 생각하는 것일까?
물건을 파는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접대비로 사용할 금액만큼을 품질을 개선하고 가격을 낮추고 서비스를 높이는 데 사용하는 것 이다. 내 생각은 이러했다. 내가 파는 물건이 남들에게는 없다면 접대를 할 필요가 없다. 내가 파는 물건이 남들도 파는 물건이라면 품질이 달라야 하며 품질이 다르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내가 파는 물건과 비슷한 물건을 파는 경쟁자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술 접대를 멀리하는 분위기가 강한 종교집단에 물건을 판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내가 제공하는 용역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내가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접대를 해야만 상대가 구매를 해 준다면 나는 “더러워서” 그런 장사는 하지 않겠다( 차라리 나는 “거래”를 하는 게 더 좋다. 얼마를 리베이트로 주겠다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양에 아부 떠는 것 보다는 그냥 봉투 하나 건네는 게 시간도 절약하고 내 적성에 더 맞는다. 하지만 사업상 이런 거래를 한 적은 없으며 공무원 상대로는 해 본 적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별도 항목에서 언급할 것이다).
수많은 물품들과 서비스를 팔아 보았지만 단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나는 영업사원에게 할당량이라는 것을 정해 준 적이 없으며 영업사원의 봉급을 판매량에 비례시켜 결정한 적도 없다. 물건이 안 팔린다면 경쟁력이 없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경영자의 책임이지 영업사원의 책임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내가 영업사원의 자질을 평가하던 기준은 얼마만큼 팔았는가가 아니라 판매대금을 언제 얼마만큼 회수하였으며 평상시에 채권회수 방법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실천해 왔는가, 제품에 대한 지식과 경쟁자들에 대한 지식은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가 이었다. 영업사원 개인별로 접대비를 할당한 사례는 단 한번도 없으며 오직 영업부 담당 최고 임원에게만 약간의 영업비를 준 적이 있는데 매출 700억~800억원 당시 그 영업비는 고작 월 100만원 정도 였다. 나는 오로지 식사 접대와 반주 정도 혹은 노래방 수준만 허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부장급 직원이 룸싸롱 접대를 하였을 때 나는 그 부장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얼마 후 그는 사표를 냈다.
누군가가 내게 접대를 하겠다면 딱 잘라 거절하였다. 어느 지점장에게는 나를 위한 접대비만큼 신용장수수료를 깎으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부류들은 가격을 100만원 낮춰달라는 나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 보다는 200만원을 룸싸롱에서 나에 대한 접대비로 날려보내는 쪽을 더 좋아하였는데 회사의 규정상 가격인하는 불허하지만 접대비는 별도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한국에는 이런 웃기는 회사들이 하나 둘이 아니며 여기에는 공기업도 포함된다).
불시에 과다 접대를 받게 되면 반드시 계산해 주었다. 접대를 안받으니 나 자신 혹은 직원들에게 뇌물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오래 전 이런 적이 있었다. 어느 보세창고에서 창고사용 요금을 빨리 지불하여 주어서 고맙다고 경리 책임자에게200만원을 보내온 것이었다(평소 나는 임직원들이 거래처에서 받는 모든 선물과 상품권을 보고하도록 했다. 추석이건 설날이건 예외가 없었다. 단순한 고마움의 표시라면 우리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보고 받자 마자 나는 담당자들 모두에게 알렸다. “이 멍청한 녀석들아. 우리가 지금 확실하게 바가지 쓰고 있다는 증거니까 즉시 조사해 보아라.” 사실이었다. 회사는 이미 적정 요금 보다도 1억원이 넘는 돈을 초과하여 지불한 상태였고 그 보세 창고는 전직 고위공무원이 “믿을만한 곳”이라고 하여 소개하여 주었던 곳이었다. 즉 그 전직 공무원은 중간에서 적어도 수천만원을 코미션으로 받고 있었던 것이다. 명심해라. 사업상 당신을 접대하고자 애쓰거나 돈 봉투를 건네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판매하는 것의 가격을 더 깎을 수 있거나 품질이 경쟁자들 보다 떨어진다는 뜻이라는 것을.
나는 접대를 하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더 나쁘다고 믿는다. 이 사회에서 접대를 받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꽤나 공부도 많이 한 새끼들이고 이른 바 일류대 다닌 새끼들도 엄청 많은데 도대체 당신이 접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을 접대하는 사람이 당신에게 술을 사주고 심지어 2차까지 준비해 주는 이유를 당신은 모른다는 말인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당신하고의 돈독한 관계가 아니라 이득이다. 이득을 얻기 위한 "얼굴 익히기" 이다. 그것을 "인간관계의 개발"이라고 미화시키지 말라. 목적이 뻔한 향응을 받는 것이 무슨 인간관계이고 "휴먼 네트워크의 개발"이란 말인가. 술을 좋아한다고? 당신 돈으로 친구들과 소주나 마셔라. 진심어린 접대는 존경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이득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접대를 받는 당신이 공직에 있다면 이권을 팔아먹는 도둑이 된다. 당신이 의료계에 있다면 환자의 주머니를 후리는 것이며 법조계에 있다면 무전유죄를 조장하는 것이고 회사의 임직원이라면 회사돈을 훔치는 것이며, 언론계에 있다면 스스로 사이비가 되겠다는 뜻이고 교육계에 있다면 위선의 탈을 쓴 것이며 예술계에 있다면 협잡꾼에 지나지 않는다(기업교육전문가 김찬배의 ‘개인과 회사를 살리는 변화와 혁신의 원칙’을 읽어라).
당신이 죽으면 당신 무덤에 “캭” 하고 가래침을 뱉을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이 개새끼들아, 부끄러운 줄 알아라. (당신 아버지가 접대를 받느라 바쁘다면 그가 당신 아버지라도 부끄러워해라.) 젊었을 때 세상을 더럽다고 욕하고 침 뱉던 당신 자신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Metallica 의 노래 중 The Unforgiven 에서 이런 가사가 나온다.
….What I"ve felt 내가 느꼈던 모든 것들이
What I"ve known 내가 알았던 모든 것들이
never shined through in what I"ve shown나의 행동 속에서는 전혀 나타나질 않았다니.
never free (나는) 전혀 자유롭지 않다
never me (나는) 전혀 내가 아니다
….
He"s battled constantly 그는 끊임없이 싸워왔지만
This fight he cannot win 이길 수 없는 싸움.
A tired man they see no longer cares 지친 몸으로 이제는 싸움을 포기하고
The old man then prepares 그렇게 나이든 채
to die regretfully 후회 속에 죽을 준비만 한다.
That old man here is me 그 늙은이가 바로 나 ….
나는 그렇게 살기 싫다. 내가 10대 20대에 제일 싫어한 사람들이 40대 50대의 꼰대(아저씨)들이었다. 내 눈에는 모두 위선자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그 꼰대 계층에 속한다. 나는 내가 젊었을 때 혐오하였던 능글능글한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아 왔다. 내가 싫어했던 꼰대 모습이 싫어서인지 배가 조금만 나와도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나는 내가 20대에 좋아했던 것을 아직도 좋아하고 그 때 싫어한 것들은 여전히 싫어한다.
이 글을 읽는 젊은이들에게: 지금 네가 침 뱉는 대상이 미래의 너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살아가라. 젊었을 때 최루탄 가스를 맡아가며 기성 세대에 분노하였던 새끼들도, 4.19 세대들이건 6.29 선언 세대들이건 간에, 세월이 지나 40대,50대가 되면 똑같이 똥개가 되어 버리기 일쑤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똥개 변신에는 그 어떤 학벌이나 학력도 백신 역할을 하지 않는다. 서울대, 연대, 고대 나왔다고, 고시에 합격하였다고 똥개가 안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왜 그렇게 가증스럽게 변하는 것일까? 바로 돈 때문이다. 그러므로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소비생활을 통제하고 몸값을 높여 나가라. 그 길 만이 네가 지금 혐오하는 대상으로 변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 룸싸롱 아가씨들에게 물어보라. 그곳에서 "제일 좃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누구냐고. 이 사회에서 이른바 존경 받는다는 직업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나올 것이다. 하나 더 물어 보아라. 그곳에서 제일 불쌍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누구냐고. 접대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것이다.
좋은 자리에 있을 때 접대 받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나무는 잘려 넘어져 있을 때가 그 크기를 가장 잘 잴 수 있는 법이다. 당신이 그 자리를 떠나면 개새끼도 당신을 쳐다 보지 않는다. 세상은 요령껏 살아야 한다고? 향응을 받고 멀쩡한 사람을 불쌍하게 만드는 것이 당신 요령인가? 접대를 하는 입장에서 뒤돌아서면 무엇을 생각하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아라. 상대방이 고마운 마음에 하는 접대라고? 밥이나 얻어 먹고 일찍 헤어져라. 상대방이, 아마도 그 아내와 가족까지도, 평생 고마워할 것이다.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 부자가 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재벌들이 정치인들에게 굽실거리며 돈 주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돈을 더 벌려고? )
sayno@korea.com , http://cafe.daum.net/saynolove 에 2004년 5월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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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투자회사 칼라일 그룹 서울 사무소의 한국계 미국인 직원이 서울에서 "왕처럼 살고 있다"고 떠벌리는 메일을 친구들에게 보낸 사건이 2001년 5월에 있었다. 문제의 직원은 미국 국적의 20대로 1999년 7월부터 2001년 4월 까지 미국의 세계적인 증권사 메릴린치에서 일하다 5월에 칼라일 그룹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서울 근무를 해왔다. 서울에 온 지 불과 10여일 만에 그는 미국 친구들에게 한국의 접대문화를 들춰가며 호화판 생활을 자랑하면서 "여러 은행의 임직원들로부터 거의 매일 골프와 저녁 술대접 등 향응을 받고 있다”고 메일을 보냈는데 , 그 메일은 메릴린치 증권사를 비롯한 뉴욕의 투자회사 직원들로 급속하게 번졌고 결국 칼라일 본사에 까지 알려져 사표를 냈다는 것이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내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 "불쌍한 은행 임직원들…." 은행에서 접대를 하여야 하는 위치에 있다면 나이가 적어도 40대는 되었을 텐데 새파랗게 젊은 20대를 접대하느라 속이 뒤틀려도 엄청 뒤틀렸을 것 같아서 였다.
사업상의 모든 접대는 대화를 통하여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나의 의견 및 내가 팔고자 하는 상품이나 용역에 대해 부연 설명하고자 하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업무 중에는 서로 할 일이 있다 보니 일과 후에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하면서 그런 시간을 마련한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대부분의 접대는 상대방과 이른 바“인간적으로 친하게”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여기서 “인간적으로 친하게” 된다는 말의 의미는 십중팔구, 상대가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는지 무슨 노래를 좋아하는지를 파악하면서 젊은 여자 애들 끼고서 상대방 비위 맞춰가며 술 쳐 먹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접대의 정점은 상대가 여자와 2차를 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차라리 그냥 창녀촌으로 가라).
상대방에게 온갖 아부를 다 하면서 포주 노릇을 하는 이런 식의 접대를 관행으로 여기지 않는 집단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종교계 일부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계는 물론이고 학계(초중고등학교와 대학도 물론 포함된다), 예술계(특히 미술계), 언론계(신문 방송 잡지 모두 포함), 의료계, 법조계, 연예계, 금융계, 군인 집단, 공무원 집단, 공기업(정말 기가 막히는 곳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민간 기업(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마찬가지이다) 등, 사회 전 분야에서 그런 접대를 한편으로는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받는다.( 참고로 대한상공회의소가 181개 기업을 상대로 “접대와 매출의 상관관계”를 물었을 때 응답자의 16%는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고 68%는 “다소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영향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불과 16%에 불과하였다.)
내가 장사, 사업을 하면서 부딪힌 갈등 중 대표적인 것이 이 뒤틀린 접대 관행(접대 문화? 그게 문화냐? ) 이었다. 내가 파는 물건이나 용역이 가격과 품질에서 남들 것 보다 우수하다면 당연히 상대방이 구입해 줄 것으로 알았는데 세상이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가격은 비싸고 품질은 떨어져도 요령만 좋으면 팔아 먹을 수 있는 게 이 세상이었고 그 요령이란 것은 다름 아니라 구매 결정자를 이런 저런 방식으로 구워 삶는 것이었다.(“구매결정 과정을 파악해라” 항목을 참조하라.).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상대방이 내 애인이 아닌 이상,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등을 미리 알아 내서 상대로부터 호감을 받아내는 것을 아더메치한(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유치한) 행위라고 단정짓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나는 룸싸롱에서 거래 상대방과 술독에 빠진 뒤 젊은 여자와의 섹스를 주선해주는 것을 개지랄 떤다고 생각하여왔지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과정으로 여긴 적이 전혀 없다. 순전히 이해 관계로만 만난 사람들 앞에서 친한 척 하면서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동백아가씨 노래에 손뼉을 치고, 신날 것도 없는데 춤도 같이 추어야 하는 것이 나는 싫다. 그런 사람들과 술잔을 머리 위에 터는 짓도 싫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짓도 싫다.
내가 그런 접대를 한 것은 "술 한잔 사야 되지 않느냐"고 면박을 주는 공직자들 상대였는데 지난 20여년간 예닐곱 번은 된다. 내가 골프를 안 배운 것도 공무원들 눈치를 보느라 일요일 마다 골프장에 끌려 나갈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아서 였다. 하지만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내 생애 단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그런 접대를 한 적이 없다.
나는 도대체 그런 식의 지랄을 접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의심스럽다. 자존심도 없고 배알도 없다는 말인가. 당신 자신이 한심한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렇게 지랄 아양 떨면서 돈을 벌어 정승처럼 쓰겠다고? 자~알 해 봐라.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에 접대 하는 거라고? 영업상 필요하다고? 꼴갑 떨고 있네. 내가 볼 때 그런 지랄 수준의 접대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핑계 김에 같이 즐기려고 하는 자들일 뿐이다. 이런 부류들은 언제나 접대비 규제에 대하여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고 목청을 높이거나 별의별 핑계를 다 끌어당기며 반대한다. 그들은 회사 돈으로 골프를 치고 룸싸롱에 다니는 것을 폼 난다고 여기며 출세한 징표로 생각하는 것일까?
물건을 파는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접대비로 사용할 금액만큼을 품질을 개선하고 가격을 낮추고 서비스를 높이는 데 사용하는 것 이다. 내 생각은 이러했다. 내가 파는 물건이 남들에게는 없다면 접대를 할 필요가 없다. 내가 파는 물건이 남들도 파는 물건이라면 품질이 달라야 하며 품질이 다르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내가 파는 물건과 비슷한 물건을 파는 경쟁자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술 접대를 멀리하는 분위기가 강한 종교집단에 물건을 판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내가 제공하는 용역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내가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접대를 해야만 상대가 구매를 해 준다면 나는 “더러워서” 그런 장사는 하지 않겠다( 차라리 나는 “거래”를 하는 게 더 좋다. 얼마를 리베이트로 주겠다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양에 아부 떠는 것 보다는 그냥 봉투 하나 건네는 게 시간도 절약하고 내 적성에 더 맞는다. 하지만 사업상 이런 거래를 한 적은 없으며 공무원 상대로는 해 본 적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별도 항목에서 언급할 것이다).
수많은 물품들과 서비스를 팔아 보았지만 단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나는 영업사원에게 할당량이라는 것을 정해 준 적이 없으며 영업사원의 봉급을 판매량에 비례시켜 결정한 적도 없다. 물건이 안 팔린다면 경쟁력이 없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경영자의 책임이지 영업사원의 책임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내가 영업사원의 자질을 평가하던 기준은 얼마만큼 팔았는가가 아니라 판매대금을 언제 얼마만큼 회수하였으며 평상시에 채권회수 방법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실천해 왔는가, 제품에 대한 지식과 경쟁자들에 대한 지식은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가 이었다. 영업사원 개인별로 접대비를 할당한 사례는 단 한번도 없으며 오직 영업부 담당 최고 임원에게만 약간의 영업비를 준 적이 있는데 매출 700억~800억원 당시 그 영업비는 고작 월 100만원 정도 였다. 나는 오로지 식사 접대와 반주 정도 혹은 노래방 수준만 허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부장급 직원이 룸싸롱 접대를 하였을 때 나는 그 부장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얼마 후 그는 사표를 냈다.
누군가가 내게 접대를 하겠다면 딱 잘라 거절하였다. 어느 지점장에게는 나를 위한 접대비만큼 신용장수수료를 깎으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부류들은 가격을 100만원 낮춰달라는 나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 보다는 200만원을 룸싸롱에서 나에 대한 접대비로 날려보내는 쪽을 더 좋아하였는데 회사의 규정상 가격인하는 불허하지만 접대비는 별도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한국에는 이런 웃기는 회사들이 하나 둘이 아니며 여기에는 공기업도 포함된다).
불시에 과다 접대를 받게 되면 반드시 계산해 주었다. 접대를 안받으니 나 자신 혹은 직원들에게 뇌물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오래 전 이런 적이 있었다. 어느 보세창고에서 창고사용 요금을 빨리 지불하여 주어서 고맙다고 경리 책임자에게200만원을 보내온 것이었다(평소 나는 임직원들이 거래처에서 받는 모든 선물과 상품권을 보고하도록 했다. 추석이건 설날이건 예외가 없었다. 단순한 고마움의 표시라면 우리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보고 받자 마자 나는 담당자들 모두에게 알렸다. “이 멍청한 녀석들아. 우리가 지금 확실하게 바가지 쓰고 있다는 증거니까 즉시 조사해 보아라.” 사실이었다. 회사는 이미 적정 요금 보다도 1억원이 넘는 돈을 초과하여 지불한 상태였고 그 보세 창고는 전직 고위공무원이 “믿을만한 곳”이라고 하여 소개하여 주었던 곳이었다. 즉 그 전직 공무원은 중간에서 적어도 수천만원을 코미션으로 받고 있었던 것이다. 명심해라. 사업상 당신을 접대하고자 애쓰거나 돈 봉투를 건네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판매하는 것의 가격을 더 깎을 수 있거나 품질이 경쟁자들 보다 떨어진다는 뜻이라는 것을.
나는 접대를 하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더 나쁘다고 믿는다. 이 사회에서 접대를 받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꽤나 공부도 많이 한 새끼들이고 이른 바 일류대 다닌 새끼들도 엄청 많은데 도대체 당신이 접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을 접대하는 사람이 당신에게 술을 사주고 심지어 2차까지 준비해 주는 이유를 당신은 모른다는 말인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당신하고의 돈독한 관계가 아니라 이득이다. 이득을 얻기 위한 "얼굴 익히기" 이다. 그것을 "인간관계의 개발"이라고 미화시키지 말라. 목적이 뻔한 향응을 받는 것이 무슨 인간관계이고 "휴먼 네트워크의 개발"이란 말인가. 술을 좋아한다고? 당신 돈으로 친구들과 소주나 마셔라. 진심어린 접대는 존경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이득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접대를 받는 당신이 공직에 있다면 이권을 팔아먹는 도둑이 된다. 당신이 의료계에 있다면 환자의 주머니를 후리는 것이며 법조계에 있다면 무전유죄를 조장하는 것이고 회사의 임직원이라면 회사돈을 훔치는 것이며, 언론계에 있다면 스스로 사이비가 되겠다는 뜻이고 교육계에 있다면 위선의 탈을 쓴 것이며 예술계에 있다면 협잡꾼에 지나지 않는다(기업교육전문가 김찬배의 ‘개인과 회사를 살리는 변화와 혁신의 원칙’을 읽어라).
당신이 죽으면 당신 무덤에 “캭” 하고 가래침을 뱉을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이 개새끼들아, 부끄러운 줄 알아라. (당신 아버지가 접대를 받느라 바쁘다면 그가 당신 아버지라도 부끄러워해라.) 젊었을 때 세상을 더럽다고 욕하고 침 뱉던 당신 자신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Metallica 의 노래 중 The Unforgiven 에서 이런 가사가 나온다.
….What I"ve felt 내가 느꼈던 모든 것들이
What I"ve known 내가 알았던 모든 것들이
never shined through in what I"ve shown나의 행동 속에서는 전혀 나타나질 않았다니.
never free (나는) 전혀 자유롭지 않다
never me (나는) 전혀 내가 아니다
….
He"s battled constantly 그는 끊임없이 싸워왔지만
This fight he cannot win 이길 수 없는 싸움.
A tired man they see no longer cares 지친 몸으로 이제는 싸움을 포기하고
The old man then prepares 그렇게 나이든 채
to die regretfully 후회 속에 죽을 준비만 한다.
That old man here is me 그 늙은이가 바로 나 ….
나는 그렇게 살기 싫다. 내가 10대 20대에 제일 싫어한 사람들이 40대 50대의 꼰대(아저씨)들이었다. 내 눈에는 모두 위선자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그 꼰대 계층에 속한다. 나는 내가 젊었을 때 혐오하였던 능글능글한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아 왔다. 내가 싫어했던 꼰대 모습이 싫어서인지 배가 조금만 나와도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나는 내가 20대에 좋아했던 것을 아직도 좋아하고 그 때 싫어한 것들은 여전히 싫어한다.
이 글을 읽는 젊은이들에게: 지금 네가 침 뱉는 대상이 미래의 너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살아가라. 젊었을 때 최루탄 가스를 맡아가며 기성 세대에 분노하였던 새끼들도, 4.19 세대들이건 6.29 선언 세대들이건 간에, 세월이 지나 40대,50대가 되면 똑같이 똥개가 되어 버리기 일쑤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똥개 변신에는 그 어떤 학벌이나 학력도 백신 역할을 하지 않는다. 서울대, 연대, 고대 나왔다고, 고시에 합격하였다고 똥개가 안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왜 그렇게 가증스럽게 변하는 것일까? 바로 돈 때문이다. 그러므로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소비생활을 통제하고 몸값을 높여 나가라. 그 길 만이 네가 지금 혐오하는 대상으로 변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 룸싸롱 아가씨들에게 물어보라. 그곳에서 "제일 좃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누구냐고. 이 사회에서 이른바 존경 받는다는 직업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나올 것이다. 하나 더 물어 보아라. 그곳에서 제일 불쌍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누구냐고. 접대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것이다.
좋은 자리에 있을 때 접대 받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나무는 잘려 넘어져 있을 때가 그 크기를 가장 잘 잴 수 있는 법이다. 당신이 그 자리를 떠나면 개새끼도 당신을 쳐다 보지 않는다. 세상은 요령껏 살아야 한다고? 향응을 받고 멀쩡한 사람을 불쌍하게 만드는 것이 당신 요령인가? 접대를 하는 입장에서 뒤돌아서면 무엇을 생각하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아라. 상대방이 고마운 마음에 하는 접대라고? 밥이나 얻어 먹고 일찍 헤어져라. 상대방이, 아마도 그 아내와 가족까지도, 평생 고마워할 것이다.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 부자가 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재벌들이 정치인들에게 굽실거리며 돈 주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돈을 더 벌려고? )
sayno@korea.com , http://cafe.daum.net/saynolove 에 2004년 5월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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