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당 교육칼럼]
아이를 보내고 아이가 4학년이 되었다. 4학년에 되면서 아이는 반장이 되었고 반장엄마인 나는 대표엄마를 하게 되었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난 학교를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아이가 4학년이 되었다. 4학년에 되면서 아이는 반장이 되었고 반장엄마인 나는 대표엄마를 하게 되었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난 학교를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첫 모임이 있는 날.
많은 학부모들이 참석하였다.
식순을 보면 교장선생님 인사말, 임원선출, 결산, 사업계획, 예산등을 결정하는 회의였다.
참 삐딱 시선이었나...
그 날 회의는 학부모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자 모인 것이 아니었다.
첫 순서가 교장선생님의 인사말씀이었다.
“학교에 재정난이 심각하니 학부모님들이 많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다른 학교는 학부모님들이 많이 도와주셨다고 하더군요 ~~~” (예전에 없어진 육성회비의 잔재였나 싶다.)
그리고 학부모회장의 진행,
“교장선생님의 인사말씀을 잘 들으셨나요? 저희가 회비를 거두어야 합니다. 작년에는 000원씩 걷었습니다. 작년대로 걷도록 하겠습니다.”
학부모회장은 작년 회장이 당연히 올해 학부모회장이 되었고 일반 상식 선에서 조차도 인선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학부모인 나는 고민하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주변의 엄마들로부터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들었었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하지마. 돈 달라고 하면 주면 돼. 그냥 넘어가. 잘못하면 아이가 다쳐.’ 이야기들이 나를 많이 불안하게 하였다.
저기요~~ 손을 들었다. 아주 자신이 없는 목소리로...
작년 회비는 어디에 쓰였나요? 회비가 어떻게 쓰였는지 알아야 올해 회비를 책정할 수 있잖아요? 결산 내역을 볼 수 있을까요?
작년에 돈을 내지도 않으셨으면서 무슨 권리가 있다고 작년 회비결산을 이야기하시나요?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럼 올해 무슨 일을 하실 것인가요?
학교와 잘 상의해야지요? 학교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할 것이니 차차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럼 왜 돈을 먼저 걷나요? 무엇을 원하는지 학교가 요청한 것이 있나요?
차차 교장선생님과 이야기할 것입니다.
교장선생님! 그런데 정말 돈이 부족하신가요? 교부금이 정말 적게 나오나요? 어떤 것들이 부족한가요? 부족하면 교육청에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의무교육에 왜 교육충당금을 부족하게 주는 지요.
“이제까지 회비를 알아서 잘 내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궁금하신 거요?”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질문을 한 것에 대한 불쾌감과 모욕감이 있으셨다는 기억이 있다.
나는 이날 일을 경험하면서부터 학부모로서 인식하고 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교육정상화운동, 학부모의식개선운동, 합법화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국가의 선거도 중요하지만 학교에서의 학부모회 대표를 뽑는 것, 학교운영위원회의 운영위원을 뽑는 것 등이 학교 안의 공동체, 교사.학부모.학생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 날 저녁 밤 10시 학부모 대 여섯 명이 집을 찾아왔다. 난 당황스러웠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요지는 교장선생님에게 잘못을 하였으니 사과를 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도 있었고, 소리지르는 학부모들. 집 방문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난동이라고 해야 하는지 난 두려웠다. 학년 학부모회 임원들의 의견에 대해 알았다고 하고 겨우 설득하여 집을 나와 이야기할 수 있는 가게로 이야기 자리를 옮겼다.
그 분들의 요지는 교장선생님에게 가서 사과를 하라는 것이었다.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면 용서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이 요지였다.
학부모님들을 집으로 보내야 했다. “알았습니다. 내일 교장선생님에게 사과하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난 교장선생님을 뵈러 갔고 학부모들이 함께 와 있었다.
난 교장선생님에게 어제 일어난 사항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사과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질문했다. "학부모대표분들을 저희 집으로 보내신 분이 교장선생님이 맞으신지요?"
학부모님들을 교장선생님은 교장실 밖으로 나가게 했고 난 교장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대립하기 시작했다.
난 학부모회의가 적법 하였는지 교육청에 물어보겠다고 하였고 교육청에 질의서를 발송하였다.
난 그 이후로 합법화 운동이라는 형식의 학부모운동을 시작하며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귀한 경험을 통하여 삶의 시선이 바뀌었다.
첫 시작 이후 난 긴장, 분노, 힘겨움, 변화 그리고 물음표를 가지고 있었다.
분명 옳은 일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학교에서 안전하지 않았다. 선생님·학부모·학생들은 모두 함께하는 안전을 고민하지 않았다. 각자 개인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학부모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일들도 거침없이 행동하는 학부모, 교장선생님에게 혼났다고 아이에게 화풀이하는 선생님, 자신들의 권익을 더 중요시 여기시는 믿었던 선생님들....
교육의 변화에 대해 학부모 운동을 하면서 계속 회의적이었다.
늘 학교는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고 관례로 인해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도 아주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일상에서 힘이 우선이었다. 어느 누구이던...
그리고 7년이 넘었을 즈음 내게 전환을 주었던 일을 기억한다.
모 고등학교에 아이가 입학하고 아이에게 부탁을 받았다. “ 엄마 정말 학교 편하게 다니고 싶어.” 그런데 초등학교, 중학교의 학부모운동 전적이 이미 학교에 전달되었고 학교운영위원회 감금 협박, 운영위원회 후보 사퇴서 작성요구로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줄 사이도 없이 또 긴장, 대립의 현장에 있게 되었다. 그 사이 교사 그리고 많은 학부모의 고통들을 민원으로 접하고 학교의 부적절한 조치와 행동들을 접하면서 또 나는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자료들을 검토하고 작성하고 알아내고 언론화하고 고발했다. 단 이유는 아이들의 안전함, 공평함, 보호, 즐거운 학교의 경험들이 미래에는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것 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언론 기사를 보며 갑자기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단 내가 했던 일은 법이 학교에서 잘 지켜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안전하고,억울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접받고 대우받는 일이었다. 힘에 의한 서열화 , 잘못된 관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론 지에 실렸던 기사들의 소재는 그리고 이야기되고 쓰여지는 글들은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일들이 합리적으로 전환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었는데 거론되었던 사람들의 인격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실제 하려고 했던 나의 의도가 무엇인지 혼란에 빠졌다.
그 날 이후 고민에 빠졌다. 법을 지키지 않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문서를 위조하거나 학부모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우회로 돈을 요구하는 행동. 시스템에 대해 정상화시키고 싶었다. 예전부터 잘못 배운 관례들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행동한 일에 대해 이야기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인격에 대해 평가하고 비난하는 경험들로 인해 불편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은 알게 된 것이었다. 결국 그리고 행위의 문제는 그 사람의 인격의 문제로 변질되고 전환되었다. 그리고 내가 찾고자 했던 진실에서 점점 벌어져가고 있다는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잘못되었으니 벌 받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생각이 자꾸 ‘정말?’ 이라는 질문으로 나에게 돌아와 있었다.
내가 학부모운동을 하며 나의 반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난 받던 방식의 틀이 왜 힘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 사람을 비난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학교의 공동체를 살리는 것 보다는 침해하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학교도 나와 내 아이를 쫓아내려 했고 나 또는 잘못한 사람들을 처벌하고 다른 학교 또는 사표쓰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지금 지역의 어느 학교에서 교장의 교권침해 등 기사가 쓰여지고 있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팩트라기보다 판단, 평가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서로를 계속 비난하면서 혼탁한 사이 공동체가 깨지고 있는 것을 또 경험하게 된다.
물론 이것이 학교의 문제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바로 옆의 신문 기사를 읽게 되면 짧은 지면에서도 정의의 이름 아래 비판하고 비난하고 처벌하라고 주장하는 다양한 내용, 혼란들을 경험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10여년전 공부하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정의란 이름으로 어떤 행위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고 벌하고 딱지 붙이는 것이 정의가 아니란 것이다.
내가 이제까지 사용하고 경험했던 것은 ‘응보적 정의’란 방식의 교육 방법, 실천 방법이었다. 잘못된 행동이 있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처벌 그리고 고통을 주는 것으로 사회 체제가 사람의 행동이 변화되리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나의 성찰, 실천은 살피지 않고 상대 그리고 대중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학교에서 아이들이 지각을 3번 하면,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무단 이탈하면, 선생님에게 대들면 최소 반성문부터 정학 , 퇴학까지 다양한 처벌을 내린다.
단 왜 그랬는지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깊게 헤아리고자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진정한 사랑으로 행동의 변화를 기다리지 않는다.
아이들의 폭력이 있을 때도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어떤 벌을 주어야 하는지가 초점인 것이다. 가해자가 왜 그러했는지 피해자는 보호되고 있는지 회복과정을 진행하고 있는지는 관심이 떨어진다. 서로 어떤 오해 또는 갈등이 있었는지에 대한 고민들은 생각하지 않는 시스템 ‘응보적 정의 시스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학교 교실, 교권보호위원회 등이 규칙에 근거해 갈등 · 폭력 당사자들의 사연과는 달리 글자로 쓰여 있는 학교규칙, 도 교육청 지침 등에 근거해 교육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처벌 중심으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예전에는 이것이 정의라고 생각했고 옳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잘못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응보적 시스템.
사람을 좌절하게 만들고 한 치의 자존감 조차 느낄 수 없게 한다.
지금도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민 그리고 과거의 영향 미래의 영향 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현장에서의 경험들을 하고 있다.
죄에 대해 벌하라,
뉴스도 신문에서도 험한 세상 소식들에 대해 인터넷상의 답 글들은 차마 읽을 수도 없는 험한 평가들로 쓰여져 있다....
그렇게 배웠고 그래서 외웠고 그렇게 경험했다.
기억한다.
가정에서
학교에 늦게 가면 큰일 날 것처럼 아이의 상황에 상관없이 닦달하던 기억
컵에 있는 우유를 쏟았다고 조심성 없다고 소리질렀던 기억
학교에서
학교를 빠지면 왜 빠졌는지 돌보기보다 몇 번 빠졌는지로 인해 불이익을 받게 하는 기억
학교에서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고 수업을 듣지 못하게 밖에 세워놓았던 기억
준비물을 가지고 오지 못했다고 혼나고 교실계단 청소를 하는 아이를 본 기억
학교에 지각했다고 따귀를 때리는 것을 본 기억
춥다고 교복 위에 잠바를 입었다고 벗으라고 호통치는 선생님의 기억
교육을 통해 배움을 통해 행동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겁을 주고 폭력을 써서 제재를 하려고 했던 일들이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경험하게 하는 일들이 아주 드물었다.
잘 하는 아이 외에 실수를 많이 하는 아이들에게는...
예전의 행위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엄마로서, 활동가로서, 옆집주민으로서 돌보지 못해서...
응보적 정의에 대해 이해하려고 한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일상의 가르침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또 고민하게 된다.
어떻게 서로 보호하고 협력하고 함께 나누는 삶을 경험하게 할 수 있을까?
이 오래된 역사 속에서
분명 다양한 실수들은 이제까지의 폭력적 응보적 역사에 기반한 것이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어떻게 아이들을 살리고 학교를 살릴 수 있을지 깊게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 찾아왔다.
http://www.podbbang.com/ch/9978
'자료[영상.방송] > 연설.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전평생교육진흥원 시민컨텐츠공모 선정 내가 찍고 내가 쓰는 영상 에세이 무료강좌 (선착순 15명) (0) | 2018.08.15 |
---|---|
[교육칼럼] 안전하고 따듯한 공동체 경험하기 _ 나에 대한 돌봄 내면의 휴식 찾기 (0) | 2015.10.24 |
[TED 강의]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0) | 2015.04.30 |
워렌버핏,빌게이츠의 부자증세에 대한 생각 (0) | 2015.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