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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왕따!

by 김PDc 201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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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학교를 다녀오는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는 친구들을 데려오기도 합니다. 아파트 1층에 위치한 지리적 요건도 그렇고 특별하게 간섭을 하지 않는 아내와 저의 특성상 녀석들이 무척 편하게 들락거리곤 합니다. 오늘도 늦은 출근을 준비하며 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친구 명을 불러들이더니 마지막 친구에게 너는 안되하며 친구를 돌려 보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깜짝 놀라서 화를 냈습니다. “빨리 친구 불러 그리고 부르기 싫으면 너희들도 나가 앞으로 오지 말고저의 단호함에 녀석 놀랐는지 쫓아냈던 친구를 다시 부릅니다. 따돌렸던 친구가 들어오고 특별한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한마디를 했습니다. “친구는 어떤 이유건 같이 보듬어주고 같이 노는 거야

 

아이들을 아파트 상가 분식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무엇이 먹고 싶니?” “떡볶이요!” 아이들은 아이들인가 봅니다. 아이들이 맛있게 떡볶이를 먹는 모습을 보고 주인 아주머니께 아이들이 달라면 주시라고 저녁에 와서 계산해 드리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출근을 했습니다.

 

학창시절 많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부모님 직종도 다양 했지요. 구멍가게 운영, 신문사 사장, 선생님, 대기업 고위 간부, 일용직, 전매청 직원, 건설사 사장 짜장면집 주방장 등등저희 부모님도 나름 버는 직종에 계셨고 동네에서 이름 석자만 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그런 위치에 계셨지만 한번도 친구에 대해서 누구누구를 골라서 사귀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항상 도와주고 누구든지 집으로 데려와 같이 편하게 놀라고 하셨습니다. 덕에 저는 주위에 친구가 많았던 것이죠. 지금도 친구들을 잊을 없습니다.

 

왕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누군가를 왕따 시키는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가 만들어내는 편견적 기형아가 아닐까 하는그리고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부모의 무관심에 그늘진 자화상이 아닐까. 무엇도 정답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왕따에 대한 기획 취재를 해볼 생각입니다. 샛길로 빠졌군요.

 

딸아이와 녀석의 친구들의 작은 행위가 갑자기 가슴속에 왕따라는 울림을 안겨주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아무 이유 없이 슬프게 또는 화나게 한다면 언젠가는 행위가 부메랑 되어 돌아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나보다 잘사는 사람도 있고 나보다 못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도 있고 나보다 못난 사람도 있습니다. 나보다 잘나고 잘사는 사람에겐 비굴하고 나보다 못나고 못사는 사람에겐 잘난 과시하는 그런 세상의 병패가 아이들에게 전이된 표출 방식 왕따라는 오염된 행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못된 행위 결국 내가 그렇게 만들어서 아이가 누군가를 왕따 시키기도 하고 누군가에 왕따 당하기도 하지 않을 하는 우려에서 글을 남겨봅니다. 어쩌면 모든 문제의 근원은 부모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은 누구나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만은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없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있도록 만들어 주고 싶은 아비의 심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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