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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는 진궁인가? 주인을 잘 못만난. 혹은 불사이군한 죄지은 사람인가?

by 김PDc 2015.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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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서울 생활을 하다가 좋은 사업이 있다 하여 대전에 내려와서 몇몇 선배들과 시작한 일이 있었지요. 일이란 것이 모두 그렇지만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전력투구를 해야 하는 부분과 버려야 할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그 놈의 정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땐 이미 성공 보다는 실패의 확률이 높기 마련이죠. CEO가 귀를 막기 시작하면 회사는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 배웠습니다.

 

어제는 같은 입장에서 일을 했던 형님과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선배를 욕하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가 결정 내리지 못하고 세치 혀에 놀아난 자신들을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형님이나 저나 누구의 지시를 받지 않고 흥하던 망하던 내가 결정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제나 세상의 기준은 사람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 같습니다.

 

오늘 밴드에 글 하나 올라 왔는데 예전 생각이 떠올라 옮겨봅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진궁'이라는 비운의 책사가 있었다.

조조가 동탁을 시해하려다 실패하고 혈혈단신으로 쫓기는 처지가 되었을 때 선뜻 조조를 따라 나설 정도로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의롭고 강직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었고, 신혼의 단 꿈 조차 꾸어보지 못한 채 결국 파경을 맞게 된다. 

이혼 사유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징하다.
쫓기는 조조에게 멸문지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잠자리를 제공한 주인장이 읍내로 막걸리를 받으러 간 사이, 술상을 보기 위해, 돼지를 잡기 위해 칼 가는 소리를 마치 자신을 죽이려는 것으로 오해한 조조는 칼을 빼 들고 일가족을 모두 도륙한다.
허겁지겁 촌로의 집을 빠져 나오던 진궁과 조조는 하필 마을 입구에서 주인장과 마주치게 된다. 급히 떠나게 되었다고 둘러대고 황망히 헤어져 길을 재촉하던 조조는 문득 걸음을 되돌려서 아무 영문도 모르는 촌로마저 살해한다. 증거인멸과 후환을 없애기 위한 살인이었다.
"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황당한 알리바이를 구성한다.

정내미가 다 떨어진 진궁은 그날 밤 조조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자신의 재주를 받아주고 함께 난세를 구할 영웅을 찾게 되는데, 이 인물이 용맹하고 겉 모습은 그럴싸 하지만 속은 쪼잔하고 도량은 간장 종지 만한 여포였다. 두 번째 잘못된 선택이었다.
하지만 진궁의 기량은 빛을 발해 당대 최고의 간웅 조조를 몰락 직전까지 몰아 부친다. 만일 여포가 진궁의 조언대로 끝까지 믿고 따랐더라도 우유부단하게 뭉기적거리지만 았았더라면 천하의 주인은 여포가 될 수도 있었다.
결국 진궁은 조조에게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고 만다.

후세의 사가들이 있어 진궁의 재능과 뜻을 펼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였다. 진궁이 비록 불사이군이라는 당대의 시대정신에서 다소 비껴난 인물이었지만 그의 강직함을 높이 여겼고, 책사에게는 주군에 대단 변별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치학에서는 대의가 있다면 두 번 까지는 정치적 변절로 삼지 않는다는 덕목이 생겨났다.

친구가 올린 글이다. 
나는 진궁인가?
주인을 잘 못만난. 혹은 불사이군한 죄지은 사람인가?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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