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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늦은 김장으로 분주한 오후
절인 배추 위로 검불이 떨어졌다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에 눈이 가득 들었다
마당의 목련이 주저주저 꽃방을 밀어 올려
감싸던 껍질들이 사소한 구호처럼 떨어져 내렸다
지난 봄 꽃샘추위로 쏟아졌던 백목련을 떠올렸다
뾰족 내민 꽃방이 수다스런 계집아이들 같아 보여도
빈 입술을 일제히 버리는 걸 보면 지난 일은 묻어두려나 보다
거두어들인 기억이 스스로 익을 때까지
견뎌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을 것이다
동안거에 들 듯 입을 다문 채
몸을 열고 초겨울 한기가 제 몸에 스미도록 허락하고 있다
새봄 반짝 추위로 꽃잎이 까맣게 타들어 갈지라도
목련은 꽃잎에 하얀 겨울의 흰 피를 가득 모을 것이다
견디는 게 잘 사는 방법이라던
그날그날의 다짐들이 내 몸에서 절여지고 있다
올겨울 김장김치가 맛있게 익었으면 싶다
- 이국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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