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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가 구절초에게
배와 내가 땅 속 뿌리로 이어진 지 오래니만큼
염치없지만 부탁을 좀 해야겠네
철없는 이월 햇살이 여물다고해도 얼마나 여물 수 있겠나
그 햇살에 더러 언 땅이 녹더라도 내 몸을 천천히 좀 밀어주게
겨우내 움츠렸다 줄기까지 마른지 오래지만
꽃을 피워내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남아
밀리는 그 끝이 아프고 아프다네
꽃 보던 시절 우악스런 낫질에 목이 잘리고
한 다발씩 묶여서 빈 처마에 매달렸다가
약탕기에서 끓어 넘치는 게 나을 뻔했다고
속에도 없는 혼잣소릴 되뇌게 해서야 쓰겠나
성하던 목숨도 시들고 비틀리다 보면
혼자 서 있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니라네
봄 눈 녹으면 스스로 몸 끊고 누울 것이니
후배님 몸도 생각하면서 천천히 밀어주게
엄살이 아니라네
그대도 한 번의 봄을 남겨두고 있지 않은가
- 이국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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