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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영상.방송]/詩사상

두 번째 혹은 맨 아래 자리

by 김PDc 2019.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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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혹은 맨 아래 자리


해가 길어지면서 연말의 일들도 기억에서 멀어졌다

오랜만에 직장후배 L과 밥 약속을 하고 “누구랑 밥 먹을지 모르는 게 퇴직이다”라는 말을 불쑥 건네고 말았다

셔츠를 입을 일이 없어진 나는 단춧구멍을 잘못 꿰었다

봄날 꽃 피는 순서도 아닌데 신경 쓸 일 없다면서 단추를 받아준 자리를 만져봤다

목에서 배꼽 방향으로 세 번째 자리, 잘못 없이도 일상에서는 죄송한 두 번째 자리, 어긋나지 않도록 길들여진 자리, 넥타이를 잠시 넣었다가 민망하게 열려있는 자리

순댓국과 소주로 실없는 저녁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와 셔츠를 벗으면서 내 자리가 궁금했다

맘 놓고 풀지 못하는 배꼽에서 목 방향으로 여섯 번째 자리?

눈치 없는 누구든지 매달릴 수 있는 어중간한 자리?

계속 끼우다보면 잘못 끼운 것을 마지막으로 눈치 채는 첫 번째 자리?

매달린 팔자라고 불평하는 단추라도 만나야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자리, 당신 아닌 다른 이를 만나면 틀어지는 모든 것이 내 몫이 되는 자리

낡은 셔츠의 단추에 길들여진 구멍 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이국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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