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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주전자
내 몸의 태생이 백토나 스텐레스도 아니고 더우기 고급 세라믹이 아니었어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겉을 닦고 속을 씻어 내며 너의 발길을 기다렸다
비가 오는 날이면 꼭 오겠거니 설레이면서 지글거리는 지짐과 부침개 부치는 소리에
흥이 더하던 날은 행복했다
내 혈육들은 뿔뿔이 흩어져 뜨거운 불기운을
먹다가 갈라지고 구멍 나는 가슴에 땜질하며
버티고 버티다가 엿가락 몇 줄이나 빨래비누
몇 토막에 목숨이 팔려버리는 일이 서러웠어도
그래도 너희들에게 뜨겁게 살다 가지 않았더냐
이 몸의 팔자는 수기를 타고 태어나 끓어 오르는 화기는 피했어도 날마다 출렁거리는 냉가슴을 품고 살면서도 생때같은 삶에 지쳐온 너희 설토들을 모두 받아 주지 않았더냐
사는 것이 무엇 있겠는가
나처럼 어깨가 찌그러지고 낯빛이 벗겨지는
몸이 되어가도 투박한 막걸리 한 대접을 마주한 사람에게 이유 없이 넘치도록 쏟아 주는 일
나를 비워 내야 네가 차오르는 것이다
이모, 꽉꽉 밟아서 한 주전자 추가요!
- 김주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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