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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영상.방송]/김주탁의 일詩일作

시간의 블랙홀

by 김PDc 2019.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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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블랙홀


벽걸이 시계가 죽었다

자살과 타살의 중립을 지나

한시에서 멈추어 버렸다

남은 잔류를 끝까지 삼키고 바둥거리며

너도 경계를 버리고 싶었나 보다

0과 12의 모호한 의심을 피하려 했을까

나는 며칠 동안 시계의 사체를 걸어 두고

시간이 두들기던 건반의 부재를 즐겼다

시침을 거꾸로 돌려가며

아쉬웠던 과거로 돌아가는 꿈도 꾸었다

그동안 저놈이 내 시간을 얼마나 끌고 

다녔는가 또는 떼밀고 하였는가

놈의 침묵은 무성의 반격이었다

하루하루 지나며 답답해지는 것은

오히려 내 쪽이 되었다

건전지를 갈아 끼워 주며

부활의 신성을 흉내 내던 귓가에

착각 착각 시간을 갉아먹는 시침 소리

우주의 박동을 조각하는 소리

생명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는 소리

망각의 웃음소리, 이별이 걸어가는 소리

때가 오면 놈 앞에서 사라져 버릴

살아 있는 것들은 균열의 중심에 갇히고

모란꽃 붉게 지던 정각


마지막 진화를 서두르는 별처럼

시간은 블랙홀의 아가리를 벌렸다


시계가 죽어 있는 동안

멈추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김주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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