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 선운사에서
선운산 술집에 앉아
봄 술의 취기는 한 여자를 벤다
구겨진 풋 정을 술끝으로 베는 것은
사라진 그 사랑의 눈물을 베는 것인가
눈물은 술에 베인다
베인 눈물은 술잔에 뚝뚝 떨어지고
꽃도 아픈 사랑을 하는가
향기를 버리고 제 속을 찢는 꽃
무엇하러 붉은 내 눈물 훔쳐 피는가
암술도 술이라고
수술도 술이라고 잔뜩 섞어 마시고
사람의 사랑보다 더 붉게 취해 버리는
동백꽃이 참 좋다
- - - - -
살다가 살다가
당신을 잊고 살았습니다
잊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허튼사람의 사랑을 살았습니다
동백꽃 붉게 피어
당신이 흘리던 눈물을 얼른 일러바치면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도 못하고
동백꽃 가슴에 미칠 듯 주저앉아
동박새 목청처럼 엉엉 울어 버렸습니다
- 김주탁 -
- 선운사는 마음먹지 않으면 참 둘러보기 힘든 위치에 있다. 나는 다섯 번쯤 찾아 보았는데, 등산은 딱 한 번 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꽃과 복분주 때문이었다. 더구나 동백꽃을 보려고 일부러 가지 않는다면 남도 여행 중에 계륵 같은 명소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김제평야와 청보리밭, 망해사, 변산반도를 둘러 볼 수 있는 코스다. 전국을 떠돌다가 만난 똥간 중에 전국 제일의 똥간이 망해사에 있다. 전통 목조 건물에 앉아 만경 바닷물을 보며 해후 하는 맛이란! 두 번째 똥간은 예산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 중턱의 암자의 똥간인 데 산줄기에서 탁 터진 산의 풍경을 보며 해후하는 멋이란! 마지막으로 금강 유원지의 토일렛이 있다. 이제 한 달 뒤면 선운사 동백이 만개하겠다. 문득 그리워지는 이월 말 월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