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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영상.방송]/詩사상 13

리어커를 찾아서 리어커를 찾아서 그래왔던 하루를 비스무리 움트리며 움직여 본다 도깨비 방망이라도 들어있는 양 허리숙여 방긋 무거운 가방을 흡! 가벼웁게 들어본다. 세상을 두드리니 폼핀 떨어지고 하늘의 해는 잊혀져 간다 오르락 내리락 마주보며 세워진 그물같은 경계속에서 하루의 생존 담아가며 흥얼흥얼 조물거려 본다 비 맞는 인생같은 노가다의 격 세상이 얽으려는 일회용 끈일뿐 쌓여진 폼핀만큼 내가 짜아안 있다 한달의 소중함이 오늘도 있는 일당의 일년 속에 나를 실은 리어커가 있다 - 조철식 - 2019. 5. 24.
사투와 사랑 사투와 사랑 일 이 삼 사 오 육 아! 기쁘다 영 영 영 영 영 영 영 영 막막해 진다 이 사 육 팔 손가락 튀기어 본다. 영 영 영 영 영 영 영 포기이다 제가 되었다 부어왔던 적금통장 그속에 적힌 삶과의 사투 수 사라진 일터 속에 눈물을 빗물삼아 흘러가 사라졌다 방 둘 거실 화장실 하나 그녀와 함께 무너지며 날아가 버렸다 사랑이란 생큼하게 두들리는 순간 재가 되지 않는 내 심장의 터에 기댈 그녀가 기다려진다 - 조철식 - 2019. 5. 23.
사랑 그 푸르름 사랑 그 푸르름 그녀의 밝고 가녀린 미소 이제 알겠어 내가 멋진줄 착각하게 만든 그 미소 그녀 버들잎 같은 수녀의 미소는 나에게 주는 용기였던거야 세파에 쓰러지지 말라고 그저 푸르름 지켜가라고 그녀는 지금 반백이 되어 마리아님께 기도하겠지 이세상 사랑으로 채워달라고 이름 모를 새소리 성당 종에 닿으면 내마음 흔들릴 때 벽에 걸린 십자가 나를 향해 두 팔 벌려 안아주며 고요해진 잔디와 수풀 사이로 사랑을 탐하는 성당의 기도소리 들어 핀 안개처럼 사륵사륵 울려 나간다 - 조철식 - 2019. 5. 22.
달콤한 입술 달콤한 입술 하루 너 생각해도 잊고 있어도 바뀌지 않아 부빅거리는 어깨밀림 느낄 수 없는 혼자일 때 생각이 될때 더욱 그냥 좋으니까 좋은 대로 있기도 해 내볼에 닿는 달콤한 입술 다정하게 들려오는 말투 손끝에서 저리 멀어질 땐 너는 모르는 네가 되지 돌아서는 네 뒷모습이라도 보고픈 이별이 되지 - 조철식 - 2019. 5. 21.
이별 이별 낚시가 금지된 이후론 갈 일이 없었다 눈 내리던 추동리 버스 정류장 마산집 누룩 둥둥 떠 있던 동동주며 앞산 숱한 까투리들 건너 마을 우물 속에 살던 붕어 두어 마리 모두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김치전을 돌담 너머로 건네주시던 옆집 벙어리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대기업 입사 시험에 떨어진 후론 웬지 그 곳이 싫어졌다 이제 찾아간다 수자원 공사에서 퇴거명령서가 왔을 거라는 형님의 심부름으로 기억을 더듬어 잡풀처럼 무성하다가 시들어진지 삼십 년 과연 집은 그대로인가 쥐약 먹고 죽은 개를 파묻었던 뒤안 감나무는 얼마나 자랐을까 이별을 마주 하러 간다 - 이영길 - 2019. 5. 10.
두 번째 혹은 맨 아래 자리 두 번째 혹은 맨 아래 자리 해가 길어지면서 연말의 일들도 기억에서 멀어졌다 오랜만에 직장후배 L과 밥 약속을 하고 “누구랑 밥 먹을지 모르는 게 퇴직이다”라는 말을 불쑥 건네고 말았다 셔츠를 입을 일이 없어진 나는 단춧구멍을 잘못 꿰었다 봄날 꽃 피는 순서도 아닌데 신경 쓸 일 없다면서 단추를 받아준 자리를 만져봤다 목에서 배꼽 방향으로 세 번째 자리, 잘못 없이도 일상에서는 죄송한 두 번째 자리, 어긋나지 않도록 길들여진 자리, 넥타이를 잠시 넣었다가 민망하게 열려있는 자리 순댓국과 소주로 실없는 저녁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와 셔츠를 벗으면서 내 자리가 궁금했다 맘 놓고 풀지 못하는 배꼽에서 목 방향으로 여섯 번째 자리? 눈치 없는 누구든지 매달릴 수 있는 어중간한 자리? 계속 끼우다보면 잘못 끼운 것.. 2019. 5. 9.
낚시의 기억 낚시의 기억 아버지는 늘그막에 농사일을 배웠다 아픈 어깨를 두고 농사 탓을 했지만 농사를 모르는 내 어깨가 아픈 것을 보면 아버지의 진단은 틀렸었다 석양의 목덜미가 물속으로 빠질 무렵이면 나는 낚시를 던졌다 반원을 그리던 별이 찌를 건드리면 잔물결이 일었다 먼 조상이 물고기 모양이었다고 했다 내 몸에는 비늘에서 미늘로 생존방식을 바꾼 이유가 남았을 것이다 다음 조상은 물고기 낚는 기술을 전했을 것이다 검은 산 그림자가 흔들리다 말없이 물 아래로 내려가곤 했다 밤새 낚시를 들어올렸다 미끼를 따먹고 달아나는 붕어가 쓰다가 밀쳐 둔 글줄을 닮았다 물에 뜬 별이 지워질 때까지 나는 낚시의 기억을 살려내지 못했다 내일은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는 날이다 어깨 통증을 느끼며 낚싯대를 접고 물비린내 나는 손을 씻었다 풀죽.. 2019. 5. 9.
구절초가 구절초에게 구절초가 구절초에게 배와 내가 땅 속 뿌리로 이어진 지 오래니만큼 염치없지만 부탁을 좀 해야겠네 철없는 이월 햇살이 여물다고해도 얼마나 여물 수 있겠나 그 햇살에 더러 언 땅이 녹더라도 내 몸을 천천히 좀 밀어주게 겨우내 움츠렸다 줄기까지 마른지 오래지만 꽃을 피워내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남아 밀리는 그 끝이 아프고 아프다네 꽃 보던 시절 우악스런 낫질에 목이 잘리고 한 다발씩 묶여서 빈 처마에 매달렸다가 약탕기에서 끓어 넘치는 게 나을 뻔했다고 속에도 없는 혼잣소릴 되뇌게 해서야 쓰겠나 성하던 목숨도 시들고 비틀리다 보면 혼자 서 있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니라네 봄 눈 녹으면 스스로 몸 끊고 누울 것이니 후배님 몸도 생각하면서 천천히 밀어주게 엄살이 아니라네 그대도 한 번의 봄을 남겨두고 있지 않은가 -.. 2019. 5. 9.
풍경 풍경 회의는 오후 세시에 열린다고 했다 유리창을 뛰어 넘은 햇살이 회의실 바닥으로 떨어지며 소집을 알렸다 모이는 사람들은 순서가 있어 생각이 많은 이가 생각이 없는 이보다 먼저 왔다 회의가 생기는 회의일수록 눈치껏 끄덕이거나 혹은 눈치를 채지 못하게 끄덕끄덕 거렸다 알 만한 상황이고, 알 만한 사람만 참석했는데 예상과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 회의가 좌우로 튀다가 진보의 햇빛과 보수의 눈빛이 햇빛과 눈빛을 서로 바꾼 것이다 별일 없었다고 수습은 했지만 눈곱만큼도 관련 없는 햇살이 멱살을 잡혔다 늦게 와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이들 때문이라고 회의실 구석 있던 온풍기를 타고 소문이 돌았다 햇살이 억울한 오후였다 - 이국형 - 2019. 5. 9.
문득 문득 늦은 김장으로 분주한 오후 절인 배추 위로 검불이 떨어졌다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에 눈이 가득 들었다 마당의 목련이 주저주저 꽃방을 밀어 올려 감싸던 껍질들이 사소한 구호처럼 떨어져 내렸다 지난 봄 꽃샘추위로 쏟아졌던 백목련을 떠올렸다 뾰족 내민 꽃방이 수다스런 계집아이들 같아 보여도 빈 입술을 일제히 버리는 걸 보면 지난 일은 묻어두려나 보다 거두어들인 기억이 스스로 익을 때까지 견뎌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을 것이다 동안거에 들 듯 입을 다문 채 몸을 열고 초겨울 한기가 제 몸에 스미도록 허락하고 있다 새봄 반짝 추위로 꽃잎이 까맣게 타들어 갈지라도 목련은 꽃잎에 하얀 겨울의 흰 피를 가득 모을 것이다 견디는 게 잘 사는 방법이라던 그날그날의 다짐들이 내 몸에서 절여지고 있다 올겨울 김장김치가.. 2019. 5. 9.
다 그래서 다 그래서 어쩌면 그 노래는 이미 불렸을지도 어쩌면 그 시는 벌써 적혀졌을지도 어쩌면 그 생각도 벌써 있었는지도 몰라 처음이라고 하는 주장들이 낯설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우리 안에, 먼 과거로부터 상상할 수 없는 미래까지 "사는 건 다 똑같아"라는 한마디 속에 담겨있는 것 같아서 어쩌면 나도 복제된 하나의 소비재 내 노래도 내 시도 내 생각도 다 그래서 다 그래서 바람도 같은 바람이어서 물도 같은 물이어서 돌고 돌뿐이어서 - 문철수 - 2019. 5. 2. 09:16 먼저 차용하는 자가 성공하는 자는 아닐까 2019. 5. 2.
불태운다는 것에 대하여 불태운다는 것에 대하여 공기가 잘 공급된 연탄불은 활활 불꽃도 거칠게 타올라 제 열에 스스로 구워지기도 하여 들판에 던져도 잘 깨지지 않고 한 생, 밟아도 부스러지지 않는 단단한 흔적을 남기는데 공기구멍 닫고 살랑살랑 조절하며 태운 연탄들은 갈아주려 집게로 잡는 순간에도 반으로 뚝 쪼개지기도 하고 골목길에 내 던지기만 해도 소갈머리 없이 부서지기도 하여 2019. 5. 1. 09:41 5월도 잔인한 달인가 - 문철수 - 노동절이 근로자의 날로 강제로 바뀐지 수십년이 지났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 또한 군사독재시절 노동이라는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의도로 기획된 것임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청정 바다는 아니지만 뻘물 짙게 밴 바다가 불과 5분 거리에 있다 30여년 전 본격적으로 .. 2019. 5. 2.
직업 직업 새로운 초지에 도착한 유목민의 첫 일거리는 밤이 되기 전 머리 둘 곳을 찾아내는 것이다 누군가의 지난한 삶의 흔적이 짙게 새겨진 자리는 좋은 거처다 한숨과 함께 피어오른 담배 냄새와 등 긁은 벽엔 누런 시간이 두텁다 니코틴에 찌든 음모는 늘 욕실 배수구에서 세월을 꼬고 있으며 주방 배수구는 목이 졸리고 있다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는 시간은 없고 마지막은 내 땀방울로 잔내를 덮는다 하루하루가 가면서 나도 본적 없는 앞서간 자의 습관을 어느덧 당연한 듯 복사하고 있다 풀을 다 뜯고 나면 양들과 함께 황무지를 떠나 다시 길을 나선다 - 문철수 - 2019. 4. 30. 07:31 30여 년 만에 다시 인천, 첫 밤을 보냈다. 2019.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