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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영상.방송]2550

시별 시별 너무 아파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너무 슬퍼 눈물도 나지 않았다 너와 나 그런 일이 몇 번 있었을까 그런 짓을 몇 번 참았을까 서른한 번째 입사 원서에 코를 박고 시를 찢어 버리던 날 숨이 턱턱 막히고 얼핏 비명도 눈물도 몰라 버렸다 아랫입술에 피가 흘렀다 - 김 주 탁 - 2019. 5. 22.
이끼 이끼 해가 뜨는 시간이 되면 햇살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뭍으로 오른 초목들은 물에 불은 몸통을 훌쩍 키워 내고 널찍널찍 잎을 넓혀 나갈 때 꽃으로의 진화는 서툰 실수였을까 미완에 머문 불구의 몸이라도 좋았다 초록 하나의 힘이라도 바닥에 바짝 엎드린 힘줄인 듯 붙잡고 가끔 풀의 정체성을 혼돈 하는 날이면 민꽃의 이끼는 젖은 바위라도 헛뿌리로 모질게 끌어안고 그 억측의 생김으로 원시의 꿈을 꾸었다 싱그러운 저 숲의 밑바닥을 지키는 소박한 욕심의 꿈을 보라 늘 푸른 원시의 백성들을 보라 - 김주탁 - * 민꽃 -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자나 홀씨로 번식하는 식물 2019. 5. 21.
달콤한 입술 달콤한 입술 하루 너 생각해도 잊고 있어도 바뀌지 않아 부빅거리는 어깨밀림 느낄 수 없는 혼자일 때 생각이 될때 더욱 그냥 좋으니까 좋은 대로 있기도 해 내볼에 닿는 달콤한 입술 다정하게 들려오는 말투 손끝에서 저리 멀어질 땐 너는 모르는 네가 되지 돌아서는 네 뒷모습이라도 보고픈 이별이 되지 - 조철식 - 2019. 5. 21.
명태 명태 춘태 추태 동태 노가리 코다리 먹태 황태 생태 북어 시 안주로 더이상 좋을 수 없는 놈 뭇 이름 있는 시인들의 언어 식성으로 맛깔스런 말장난 유희의 친화에 놀아나도 너는 바다의 폼나는 어족이었으니 네가 바다를 떠나 죽어 떠돌던 몸뚱이처럼 먹성대로 붙혀 지던 그 많은 억울한 한 몸의 죄목 너는 그저 명태였고 어쩌다 그물에 걸린 죄로 명태의 명퇴를 눈물 없이 받아들였으나 죄명 하나하나에 제주 같은 술잔을 받으며 네 몸뚱이가 부서지고 찢겨지는 능지처참에 부관참시를 당해도 혀가 없어 말 못하는 너는 쩍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몸욕 치르며 등뼈 하나라도 지켜 내는구나 - 김주탁 - 2019. 5. 20.
청춘을 보내며 청춘을 보내며 욕심 없이 산다고 살다 보니 내어줄 아무것도 없어 떠나가는 너의 빈손이 민망하여 바람의 길을 습작하던 내 잡시라도 쫄깃쫄깃 씹으며 돌아가라고 바람벽에 걸어 논 통 북어 한 쾌 끌러 빈손에 들려 보냈다 그놈도 한때는 물 좋던 명태였다네 - 김주탁 - - 2019년 명태조업이 금지되면서 국내산 생태탕은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사실 동태 생태탕은 모두 수입산! 삼십 이 년 전 충대 막걸리 동산에서 낮술 빨다가 우연히 데모에 동참했다가 뒤풀이로 먹었던 그때 유성시장 국내산 생태탕의 시원한 맛을 잊을 수 없다. 빨리 동해에 명태가 넘쳐나길 바란다! 2019. 5. 20.
바람개비 바람개비 수직 끝에 매달려 거센 바람이 불어오면 윙윙윙 찢어질 듯 울어대며 어지러운 원주를 토해 내는 바람개비는 가슴 한복판에 대못 하나 콱 박혀 날아갈 수 없는 비행의 꿈 거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슬픈 동화처럼 울었다 - 김주탁 - 2019. 5. 19.
냉이꽃 냉이꽃 가까이 다가가야 잘 보이는 풀꽃 쪼그려 앉아야 더 잘 보이는 풀꽃 작은 욕심의 기쁨을 일러 주는 꽃 그 누구도 이쁘다 꺾어가지 않는 풀꽃 순박한 웃음을 모두 내어 주는 꽃 고향 집 순이의 볼조개처럼 피는 풀꽃 쬐그만 하얀 냉이꽃 - 김주탁 - * 볼조개- 보조개에 대한 충남의 방언 - 보잘것없는 냉이의 꽃말이 좋다. `당신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2019. 5. 18.
아카시아꽃 아카시아꽃 아카시아 잎 하나 뜯어내며 사랑한다 또 한 잎 뜯어내며 사랑 안 한다 마지막 남은 한 잎 달콤한 손끝의 비밀로 남겨 두던 청보리 까슬 거리는 보릿고개에 서서 향긋한 송이 송이꽃 입에 물고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첫사랑 사라진 유년의 작은 배꼽 같은 꽃 하얀 아카시아 꽃 - 김주탁 - 2019. 5. 17.
글쟁이 촌막 글쟁이 촌막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을 글 그림으로 적거나 인쇄한 여러 낱장을 묶어 만든 것 백과사전은 책이라 적어 놓았다 글을 쓴지 사십 년이 지나 친구가 책을 냈다 떠들썩하니 출판 기념회까지 치르고 뒤풀이하던 자리 소설을 쓰고 시를 짓고 여기저기 줄줄이 등단까지 하던 놈이 그동안 실컷 논술장사로 배불리 먹고살다가 처녀 수필집 뒷장에 전언까지 쓰고 이름을 적고 싸인까지 갈겨 대더니 내게 책을 건네고 술잔도 권한다 술잔만 받았다 `나 , 술보다 더 취하면 가져가마! 집에 가져가서 밑 닦을지도 모르겠지만, 주는 것이니 꼭 챙겨가마' 놈의 글재주 뒤꿈치도 못 되는 가난한 시인 흉내를 내는 내 손을 꼭 잡고 글쟁이 촌막 하나 짓는 일이 다 뭐라고 우린 서로 술배 터져라 웃고 웃다가 껄껄껄 울었다 - 김주탁 - 2019. 5. 16.
대덕구 숨은명소를 찾아라 공모전 [공모 개요] ᦂ 공모주제 : 대덕구 내 사진 찍기 좋은 명소 ᦂ 응모자격 : 누구나 참여 가능 ᦂ 응모방법 :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대덕문화원”으로 사진 전송 또는 이메일 접수 (ddcc7517@hanmail.net) ᦂ 접 수 명 : 이름_연락처_사진출처 예시) 김대덕_042_627_7517 ᦂ 응모횟수 : 제한 없음 ᦂ 응모기간 : 4월 5일(금)~5월 24일(금)18:00까지 ᦂ 선정발표 : 5월30일(목) / 개별연락 2019. 5. 15.
반비례의 맛 반비례의 맛 초장 찍은 참두릅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청한 살 맛 나지 않는가 사람의 나이는 덜어내는 것이 못돼서 점점 사는 것이 재미 없어지는 날 두 사발 세 사발 살맛을 실컷 마시다가 다음날, 죽을 맛이었다 몸의 나이도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서 숙취로 정신 차리는 아침 풋한 두릅에 생때같은 살맛에 취한 뒤에 뭐 하나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 김주탁 - 2019. 5. 15.
산수유 / 영배에게 산수유 / 영배에게 봄술이 취해 오면 무심코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저놈의 꽃 때문이다 저놈의 꽃 때문이다 노란 꽃잎이 성게 가시처럼 터져 그럭한 봄이 다 흩어지기 전에 저럭히 늙어 가는 나는 봄술을 이기지 못하고 욕질하듯 불러 보는 사람이 있다 노란 산수유꽃 주절이 피는 날이면 너도 나처럼 그러하느냐 산수유 꽃이 핀다고 너도 나처럼 늙어가며 욕질하느냐 - 김주탁 - 2019. 5. 14.
누군가를 떠난 뒤에도 그 자리에 가슴을 두고 갈 수 있다는 것이 누군가를 떠난 뒤에도 그 자리에 가슴을 두고 갈 수 있다는 것이 2019년 5월 12일 21시 21분 6호차 18호석 나어린 여자의 화장기는 짙은 경계다 이데올로기보다 무서운 것은 단절이다 이데야 서로 치고 박고 한다지만 외면의 가면을 쓴 단절은 침묵의 소음과 동행한다 어디까지 가느냐 지금 뭐 하느냐 무슨 일로 거기까지 가느냐 앞으로 뭘 하려고 그러냐 나이가 어떻게 되냐 애인은 있느냐 입이 근지러워 참기 힘든 것은 내 오래 전 동석의 말품을 한없이 나누던 지친 여로의 습성 때문이었을까 도심을 떠나 달리는 차장 밖 시커먼 들녘에는 삶은 계란 껍질 같은 조각별들이 던져지고 사람의 눈빛은 간지러운 졸음에 무거워지며 떠나는 것이 매일같이 익숙한 열차 혼자만 온몸으로 시끄러웠다 부경선의 상행 속에 혀끝에 돋는 비.. 2019. 5. 13.
으름꽃 으름꽃 푸른 은화 닷냥 잎자루 끝으로 매달고 이리저리 굽어 틀며 오른 덩굴 바람을 승낙하는 잎맥의 지문들 허공마다 푸른 지장으로 흔들리는 화엄의 몸짓 님이 오시려나 보다 너의 자태는 자비의 합장 보랏빛 작은 꽃 연등처럼 둥글게 몽글졌다 잎에도 지문이 있어 초록으로 사는 꼴 손처럼 벌린 으름잎 사이사이 조롱조롱 꽃등을 내고 소원을 벌리고 있다 성취의 향을 피워 내고 있다 - 김주탁 - 2019. 5. 13.
붕꽝 붕꽝 도통 알 수 없는 일 붕어의 마음 물청태 때문에 월광 때문이라 알면서도 무슨 욕심이 그리 나던지 별빛 물 바람 개구리 소리 시원한 침묵 가슴 망에 가득 담아 오면서도 도통 알 수 없는 것 붕어는 오지 않고 피라미 극성에 꾸깃꾸깃 조바심 부리던 내 성질머리 꾼이 되려면은 아직 멀었다. - 김주탁 - 2019. 5. 13.
참새의 랩소디 참새의 랩소디 햇살보다 먼저 깨어나 쫑알 쫑알 아침이 시끄러운 새 끓어오른 뚝배기처럼 뽀글 뽀글거리며 필통같이 달그락거리는 수다를 떨다가 까만 전선 위로 쪼르르 몰려 앉는 콤마 같은 새 눈 정 귓정의 향수를 푸륵 푸륵 쪼아 대는 조막만 한 몸짓 살아 가겠다고 시끄럽게 살아남겠다고 짹짹거리는 스타카토 -헝가리안 랩소디 도시의 옥타브와 섞이지 않는 새의 목청을 검은 건반의 가시처럼 키웠다 - 김주탁 - -용문동 아침 골목의 참새떼! 사진이 기막히게 찍혔다 확대하면 수십 가지의 날갯짓이 보인다! 2019. 5. 11.
풀 풀은 꺾이지 않는다 풀은 부러지지도 않는다 바람이 거칠면 서로의 알몸을 끌어안고 지독한 눈물의 몸살이 그랬던 것처럼 휘어졌다 다시 일어선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제 곡절을 끝내듯 풀에게도 초록의 시간은 여지없으니 햇살이 얇아지는 날 뿌리에 남은 마지막 힘을 악물고 살아 냈던 세상에 풀씨를 사리처럼 토하며 풀은 풀로서 죽는다 시에 뼈를 묻고 죽는 시인처럼 풀은 푸른 도를 통한 것이겠지요 - 김주탁 - 2019. 5. 10.
이별 이별 낚시가 금지된 이후론 갈 일이 없었다 눈 내리던 추동리 버스 정류장 마산집 누룩 둥둥 떠 있던 동동주며 앞산 숱한 까투리들 건너 마을 우물 속에 살던 붕어 두어 마리 모두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김치전을 돌담 너머로 건네주시던 옆집 벙어리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대기업 입사 시험에 떨어진 후론 웬지 그 곳이 싫어졌다 이제 찾아간다 수자원 공사에서 퇴거명령서가 왔을 거라는 형님의 심부름으로 기억을 더듬어 잡풀처럼 무성하다가 시들어진지 삼십 년 과연 집은 그대로인가 쥐약 먹고 죽은 개를 파묻었던 뒤안 감나무는 얼마나 자랐을까 이별을 마주 하러 간다 - 이영길 - 2019. 5. 10.
카꽃 카꽃 친구가 카톡으로 카네이션을 보내 왔다 가슴에 꽃을 달아 드릴 부모도 없고 종이꽃이라도 달아 줄 새끼들도 없는 데 이 무슨 민망하고 어색한 카꽃인가 실가로 몆 만원은 족히 될 것 같은 꽃바구니가 부담 되어 얼른 돌려 보냈다 참 불편한 처사다 그 깟 꽃 한송이가 뭐라고 이토록 잃어 버린 가슴이 그리워 지는가 치꽃의 무게를 알지 못하는 마음이 슬픈가 한줌 흙이 되고 재가 되는 세월 구봉산 영락원 납골함에 붙은 사진에는 꽃을 단 자와 달지 않은 자들이 말을 닫고 카톡도 닿지 않는 저승에 매달린 카네이션만 혼자 붉었다 - 김주탁 - 2019. 5. 10.
두 번째 혹은 맨 아래 자리 두 번째 혹은 맨 아래 자리 해가 길어지면서 연말의 일들도 기억에서 멀어졌다 오랜만에 직장후배 L과 밥 약속을 하고 “누구랑 밥 먹을지 모르는 게 퇴직이다”라는 말을 불쑥 건네고 말았다 셔츠를 입을 일이 없어진 나는 단춧구멍을 잘못 꿰었다 봄날 꽃 피는 순서도 아닌데 신경 쓸 일 없다면서 단추를 받아준 자리를 만져봤다 목에서 배꼽 방향으로 세 번째 자리, 잘못 없이도 일상에서는 죄송한 두 번째 자리, 어긋나지 않도록 길들여진 자리, 넥타이를 잠시 넣었다가 민망하게 열려있는 자리 순댓국과 소주로 실없는 저녁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와 셔츠를 벗으면서 내 자리가 궁금했다 맘 놓고 풀지 못하는 배꼽에서 목 방향으로 여섯 번째 자리? 눈치 없는 누구든지 매달릴 수 있는 어중간한 자리? 계속 끼우다보면 잘못 끼운 것.. 2019. 5. 9.
낚시의 기억 낚시의 기억 아버지는 늘그막에 농사일을 배웠다 아픈 어깨를 두고 농사 탓을 했지만 농사를 모르는 내 어깨가 아픈 것을 보면 아버지의 진단은 틀렸었다 석양의 목덜미가 물속으로 빠질 무렵이면 나는 낚시를 던졌다 반원을 그리던 별이 찌를 건드리면 잔물결이 일었다 먼 조상이 물고기 모양이었다고 했다 내 몸에는 비늘에서 미늘로 생존방식을 바꾼 이유가 남았을 것이다 다음 조상은 물고기 낚는 기술을 전했을 것이다 검은 산 그림자가 흔들리다 말없이 물 아래로 내려가곤 했다 밤새 낚시를 들어올렸다 미끼를 따먹고 달아나는 붕어가 쓰다가 밀쳐 둔 글줄을 닮았다 물에 뜬 별이 지워질 때까지 나는 낚시의 기억을 살려내지 못했다 내일은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는 날이다 어깨 통증을 느끼며 낚싯대를 접고 물비린내 나는 손을 씻었다 풀죽.. 2019. 5. 9.
구절초가 구절초에게 구절초가 구절초에게 배와 내가 땅 속 뿌리로 이어진 지 오래니만큼 염치없지만 부탁을 좀 해야겠네 철없는 이월 햇살이 여물다고해도 얼마나 여물 수 있겠나 그 햇살에 더러 언 땅이 녹더라도 내 몸을 천천히 좀 밀어주게 겨우내 움츠렸다 줄기까지 마른지 오래지만 꽃을 피워내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남아 밀리는 그 끝이 아프고 아프다네 꽃 보던 시절 우악스런 낫질에 목이 잘리고 한 다발씩 묶여서 빈 처마에 매달렸다가 약탕기에서 끓어 넘치는 게 나을 뻔했다고 속에도 없는 혼잣소릴 되뇌게 해서야 쓰겠나 성하던 목숨도 시들고 비틀리다 보면 혼자 서 있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니라네 봄 눈 녹으면 스스로 몸 끊고 누울 것이니 후배님 몸도 생각하면서 천천히 밀어주게 엄살이 아니라네 그대도 한 번의 봄을 남겨두고 있지 않은가 -.. 2019. 5. 9.
풍경 풍경 회의는 오후 세시에 열린다고 했다 유리창을 뛰어 넘은 햇살이 회의실 바닥으로 떨어지며 소집을 알렸다 모이는 사람들은 순서가 있어 생각이 많은 이가 생각이 없는 이보다 먼저 왔다 회의가 생기는 회의일수록 눈치껏 끄덕이거나 혹은 눈치를 채지 못하게 끄덕끄덕 거렸다 알 만한 상황이고, 알 만한 사람만 참석했는데 예상과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 회의가 좌우로 튀다가 진보의 햇빛과 보수의 눈빛이 햇빛과 눈빛을 서로 바꾼 것이다 별일 없었다고 수습은 했지만 눈곱만큼도 관련 없는 햇살이 멱살을 잡혔다 늦게 와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이들 때문이라고 회의실 구석 있던 온풍기를 타고 소문이 돌았다 햇살이 억울한 오후였다 - 이국형 - 2019. 5. 9.
문득 문득 늦은 김장으로 분주한 오후 절인 배추 위로 검불이 떨어졌다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에 눈이 가득 들었다 마당의 목련이 주저주저 꽃방을 밀어 올려 감싸던 껍질들이 사소한 구호처럼 떨어져 내렸다 지난 봄 꽃샘추위로 쏟아졌던 백목련을 떠올렸다 뾰족 내민 꽃방이 수다스런 계집아이들 같아 보여도 빈 입술을 일제히 버리는 걸 보면 지난 일은 묻어두려나 보다 거두어들인 기억이 스스로 익을 때까지 견뎌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을 것이다 동안거에 들 듯 입을 다문 채 몸을 열고 초겨울 한기가 제 몸에 스미도록 허락하고 있다 새봄 반짝 추위로 꽃잎이 까맣게 타들어 갈지라도 목련은 꽃잎에 하얀 겨울의 흰 피를 가득 모을 것이다 견디는 게 잘 사는 방법이라던 그날그날의 다짐들이 내 몸에서 절여지고 있다 올겨울 김장김치가.. 2019. 5. 9.
꽃의 명제 꽃의 명제 봄은 참이다 참을 나열하듯 꽃이 핀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핀다 시들고 져 버릴 것을 분명 알면서도 꽃의 웃음은 화려한 절정의 유희를 위하여 짙은 화장 중이다 꽃이 없는 삼월은 모두 거짓이다 - 김주탁 - 2019. 5. 8.
똥가루 서말 똥가루 서말 오늘도 지리고 뭉개 놓으셨다 확 짜증부터 부린다 몸부터 닦아 드리고 락스로 바닥을 훔치고 문질러도 락스 냄새보다 진한 똥내 아이구 아이구 짜고 짜내는 걸레질마다 지청구가 서말이다 내 똥가루 서말은 달게 드시며 웃으셨을 어머니 그깟 냄새 한 홉 맡는다고 성질 부리던 못난 치사랑 그렇게 삐툰 투정 서말은 드시고 돌아가셨다 거친 역정 서말은 젖내처럼 달게 드시고 떠나가셨다 후회 한 되 눈물 한 말 그리움 한 섬 똥가루 서말 오월의 외상값 치르는 때 늦은 불효 뒤늦은 참회의 서말값은 어찌하랴 내 피와 살을 짜고 짜내도 영원히 갚지 못할 치부 어찌하랴 어찌하랴 손바닥만 한 가슴꽃자리 영영 잃은 나를 - 김주탁 - - 카네이션 달아 드릴 가슴 없어 더욱 가슴 저린 어버이날! 2019. 5. 7.
질경이꽃 질경이꽃 쥐와 새가 만났다 굴을 파고 숨어 사느니 날개를 달고 세상을 날겠다던 쥐는 새와 은밀한 거래를 하였다 새는 비행의 자유를 나누어 주는 대신 허공의 반에 대한 상호 불가침을 주고받다가 이분할 수 없는 하늘을 고민하였다 어리석은 세상이 입을 다문 사이 둘은 절묘한 협약 하나를 주고받았다 새가 둥지로 날아가며 어둠을 끌고 왔고 박쥐는 새가 버린 밤하늘에 날아올랐다 그것들이 낮밤으로 쪼아 먹던 집채만 한 탐욕의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리 질경이 꽃이 피고 있었다 밟혀도 밟혀도 꺾이지 않는 풀 몸을 일으켜 하얀 꽃이 피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나는 꽃 질경 질경 피었다 - 김주탁 - -질경이 꽃말은 발자취다. 민중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고 싶은 풀이다 2019.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