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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영상.방송]/김주탁의 일詩일作145

길장미 길장미 사람을 살다가 한 사람에게서 떠날 수 있을까 사랑을 살다가 하나의 사랑에서 떠날 수 있을까 가시를 품는 꽃 가시 돋친 향기를 악물고 있다가 붉은 가슴을 찢어 내는 장미꽃 하나의 사랑을 살다가 한 사람에게서 가시 없이 떠날 수 있을까 가시에 꽃이 피면 가시 없이 너를 떠날 수는 없을까 저리 붉게 미쳐 장미꽃 피고 피는 길에 꽃에서 꽃으로 피는 너를 손끝에 쓰린 눈물 같은 방울 피를 보아도 그런 사람의 사랑을 꺾고 싶다 - 김주탁 - 2019. 5. 22.
시별 시별 너무 아파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너무 슬퍼 눈물도 나지 않았다 너와 나 그런 일이 몇 번 있었을까 그런 짓을 몇 번 참았을까 서른한 번째 입사 원서에 코를 박고 시를 찢어 버리던 날 숨이 턱턱 막히고 얼핏 비명도 눈물도 몰라 버렸다 아랫입술에 피가 흘렀다 - 김 주 탁 - 2019. 5. 22.
이끼 이끼 해가 뜨는 시간이 되면 햇살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뭍으로 오른 초목들은 물에 불은 몸통을 훌쩍 키워 내고 널찍널찍 잎을 넓혀 나갈 때 꽃으로의 진화는 서툰 실수였을까 미완에 머문 불구의 몸이라도 좋았다 초록 하나의 힘이라도 바닥에 바짝 엎드린 힘줄인 듯 붙잡고 가끔 풀의 정체성을 혼돈 하는 날이면 민꽃의 이끼는 젖은 바위라도 헛뿌리로 모질게 끌어안고 그 억측의 생김으로 원시의 꿈을 꾸었다 싱그러운 저 숲의 밑바닥을 지키는 소박한 욕심의 꿈을 보라 늘 푸른 원시의 백성들을 보라 - 김주탁 - * 민꽃 -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자나 홀씨로 번식하는 식물 2019. 5. 21.
명태 명태 춘태 추태 동태 노가리 코다리 먹태 황태 생태 북어 시 안주로 더이상 좋을 수 없는 놈 뭇 이름 있는 시인들의 언어 식성으로 맛깔스런 말장난 유희의 친화에 놀아나도 너는 바다의 폼나는 어족이었으니 네가 바다를 떠나 죽어 떠돌던 몸뚱이처럼 먹성대로 붙혀 지던 그 많은 억울한 한 몸의 죄목 너는 그저 명태였고 어쩌다 그물에 걸린 죄로 명태의 명퇴를 눈물 없이 받아들였으나 죄명 하나하나에 제주 같은 술잔을 받으며 네 몸뚱이가 부서지고 찢겨지는 능지처참에 부관참시를 당해도 혀가 없어 말 못하는 너는 쩍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몸욕 치르며 등뼈 하나라도 지켜 내는구나 - 김주탁 - 2019. 5. 20.
청춘을 보내며 청춘을 보내며 욕심 없이 산다고 살다 보니 내어줄 아무것도 없어 떠나가는 너의 빈손이 민망하여 바람의 길을 습작하던 내 잡시라도 쫄깃쫄깃 씹으며 돌아가라고 바람벽에 걸어 논 통 북어 한 쾌 끌러 빈손에 들려 보냈다 그놈도 한때는 물 좋던 명태였다네 - 김주탁 - - 2019년 명태조업이 금지되면서 국내산 생태탕은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사실 동태 생태탕은 모두 수입산! 삼십 이 년 전 충대 막걸리 동산에서 낮술 빨다가 우연히 데모에 동참했다가 뒤풀이로 먹었던 그때 유성시장 국내산 생태탕의 시원한 맛을 잊을 수 없다. 빨리 동해에 명태가 넘쳐나길 바란다! 2019. 5. 20.
바람개비 바람개비 수직 끝에 매달려 거센 바람이 불어오면 윙윙윙 찢어질 듯 울어대며 어지러운 원주를 토해 내는 바람개비는 가슴 한복판에 대못 하나 콱 박혀 날아갈 수 없는 비행의 꿈 거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슬픈 동화처럼 울었다 - 김주탁 - 2019. 5. 19.
냉이꽃 냉이꽃 가까이 다가가야 잘 보이는 풀꽃 쪼그려 앉아야 더 잘 보이는 풀꽃 작은 욕심의 기쁨을 일러 주는 꽃 그 누구도 이쁘다 꺾어가지 않는 풀꽃 순박한 웃음을 모두 내어 주는 꽃 고향 집 순이의 볼조개처럼 피는 풀꽃 쬐그만 하얀 냉이꽃 - 김주탁 - * 볼조개- 보조개에 대한 충남의 방언 - 보잘것없는 냉이의 꽃말이 좋다. `당신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2019. 5. 18.
아카시아꽃 아카시아꽃 아카시아 잎 하나 뜯어내며 사랑한다 또 한 잎 뜯어내며 사랑 안 한다 마지막 남은 한 잎 달콤한 손끝의 비밀로 남겨 두던 청보리 까슬 거리는 보릿고개에 서서 향긋한 송이 송이꽃 입에 물고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첫사랑 사라진 유년의 작은 배꼽 같은 꽃 하얀 아카시아 꽃 - 김주탁 - 2019. 5. 17.
글쟁이 촌막 글쟁이 촌막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을 글 그림으로 적거나 인쇄한 여러 낱장을 묶어 만든 것 백과사전은 책이라 적어 놓았다 글을 쓴지 사십 년이 지나 친구가 책을 냈다 떠들썩하니 출판 기념회까지 치르고 뒤풀이하던 자리 소설을 쓰고 시를 짓고 여기저기 줄줄이 등단까지 하던 놈이 그동안 실컷 논술장사로 배불리 먹고살다가 처녀 수필집 뒷장에 전언까지 쓰고 이름을 적고 싸인까지 갈겨 대더니 내게 책을 건네고 술잔도 권한다 술잔만 받았다 `나 , 술보다 더 취하면 가져가마! 집에 가져가서 밑 닦을지도 모르겠지만, 주는 것이니 꼭 챙겨가마' 놈의 글재주 뒤꿈치도 못 되는 가난한 시인 흉내를 내는 내 손을 꼭 잡고 글쟁이 촌막 하나 짓는 일이 다 뭐라고 우린 서로 술배 터져라 웃고 웃다가 껄껄껄 울었다 - 김주탁 - 2019. 5. 16.
반비례의 맛 반비례의 맛 초장 찍은 참두릅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청한 살 맛 나지 않는가 사람의 나이는 덜어내는 것이 못돼서 점점 사는 것이 재미 없어지는 날 두 사발 세 사발 살맛을 실컷 마시다가 다음날, 죽을 맛이었다 몸의 나이도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서 숙취로 정신 차리는 아침 풋한 두릅에 생때같은 살맛에 취한 뒤에 뭐 하나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 김주탁 - 2019. 5. 15.
산수유 / 영배에게 산수유 / 영배에게 봄술이 취해 오면 무심코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저놈의 꽃 때문이다 저놈의 꽃 때문이다 노란 꽃잎이 성게 가시처럼 터져 그럭한 봄이 다 흩어지기 전에 저럭히 늙어 가는 나는 봄술을 이기지 못하고 욕질하듯 불러 보는 사람이 있다 노란 산수유꽃 주절이 피는 날이면 너도 나처럼 그러하느냐 산수유 꽃이 핀다고 너도 나처럼 늙어가며 욕질하느냐 - 김주탁 - 2019. 5. 14.
누군가를 떠난 뒤에도 그 자리에 가슴을 두고 갈 수 있다는 것이 누군가를 떠난 뒤에도 그 자리에 가슴을 두고 갈 수 있다는 것이 2019년 5월 12일 21시 21분 6호차 18호석 나어린 여자의 화장기는 짙은 경계다 이데올로기보다 무서운 것은 단절이다 이데야 서로 치고 박고 한다지만 외면의 가면을 쓴 단절은 침묵의 소음과 동행한다 어디까지 가느냐 지금 뭐 하느냐 무슨 일로 거기까지 가느냐 앞으로 뭘 하려고 그러냐 나이가 어떻게 되냐 애인은 있느냐 입이 근지러워 참기 힘든 것은 내 오래 전 동석의 말품을 한없이 나누던 지친 여로의 습성 때문이었을까 도심을 떠나 달리는 차장 밖 시커먼 들녘에는 삶은 계란 껍질 같은 조각별들이 던져지고 사람의 눈빛은 간지러운 졸음에 무거워지며 떠나는 것이 매일같이 익숙한 열차 혼자만 온몸으로 시끄러웠다 부경선의 상행 속에 혀끝에 돋는 비.. 2019. 5. 13.
으름꽃 으름꽃 푸른 은화 닷냥 잎자루 끝으로 매달고 이리저리 굽어 틀며 오른 덩굴 바람을 승낙하는 잎맥의 지문들 허공마다 푸른 지장으로 흔들리는 화엄의 몸짓 님이 오시려나 보다 너의 자태는 자비의 합장 보랏빛 작은 꽃 연등처럼 둥글게 몽글졌다 잎에도 지문이 있어 초록으로 사는 꼴 손처럼 벌린 으름잎 사이사이 조롱조롱 꽃등을 내고 소원을 벌리고 있다 성취의 향을 피워 내고 있다 - 김주탁 - 2019. 5. 13.
붕꽝 붕꽝 도통 알 수 없는 일 붕어의 마음 물청태 때문에 월광 때문이라 알면서도 무슨 욕심이 그리 나던지 별빛 물 바람 개구리 소리 시원한 침묵 가슴 망에 가득 담아 오면서도 도통 알 수 없는 것 붕어는 오지 않고 피라미 극성에 꾸깃꾸깃 조바심 부리던 내 성질머리 꾼이 되려면은 아직 멀었다. - 김주탁 - 2019. 5. 13.
참새의 랩소디 참새의 랩소디 햇살보다 먼저 깨어나 쫑알 쫑알 아침이 시끄러운 새 끓어오른 뚝배기처럼 뽀글 뽀글거리며 필통같이 달그락거리는 수다를 떨다가 까만 전선 위로 쪼르르 몰려 앉는 콤마 같은 새 눈 정 귓정의 향수를 푸륵 푸륵 쪼아 대는 조막만 한 몸짓 살아 가겠다고 시끄럽게 살아남겠다고 짹짹거리는 스타카토 -헝가리안 랩소디 도시의 옥타브와 섞이지 않는 새의 목청을 검은 건반의 가시처럼 키웠다 - 김주탁 - -용문동 아침 골목의 참새떼! 사진이 기막히게 찍혔다 확대하면 수십 가지의 날갯짓이 보인다! 2019. 5. 11.
풀 풀은 꺾이지 않는다 풀은 부러지지도 않는다 바람이 거칠면 서로의 알몸을 끌어안고 지독한 눈물의 몸살이 그랬던 것처럼 휘어졌다 다시 일어선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제 곡절을 끝내듯 풀에게도 초록의 시간은 여지없으니 햇살이 얇아지는 날 뿌리에 남은 마지막 힘을 악물고 살아 냈던 세상에 풀씨를 사리처럼 토하며 풀은 풀로서 죽는다 시에 뼈를 묻고 죽는 시인처럼 풀은 푸른 도를 통한 것이겠지요 - 김주탁 - 2019. 5. 10.
카꽃 카꽃 친구가 카톡으로 카네이션을 보내 왔다 가슴에 꽃을 달아 드릴 부모도 없고 종이꽃이라도 달아 줄 새끼들도 없는 데 이 무슨 민망하고 어색한 카꽃인가 실가로 몆 만원은 족히 될 것 같은 꽃바구니가 부담 되어 얼른 돌려 보냈다 참 불편한 처사다 그 깟 꽃 한송이가 뭐라고 이토록 잃어 버린 가슴이 그리워 지는가 치꽃의 무게를 알지 못하는 마음이 슬픈가 한줌 흙이 되고 재가 되는 세월 구봉산 영락원 납골함에 붙은 사진에는 꽃을 단 자와 달지 않은 자들이 말을 닫고 카톡도 닿지 않는 저승에 매달린 카네이션만 혼자 붉었다 - 김주탁 - 2019. 5. 10.
꽃의 명제 꽃의 명제 봄은 참이다 참을 나열하듯 꽃이 핀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핀다 시들고 져 버릴 것을 분명 알면서도 꽃의 웃음은 화려한 절정의 유희를 위하여 짙은 화장 중이다 꽃이 없는 삼월은 모두 거짓이다 - 김주탁 - 2019. 5. 8.
똥가루 서말 똥가루 서말 오늘도 지리고 뭉개 놓으셨다 확 짜증부터 부린다 몸부터 닦아 드리고 락스로 바닥을 훔치고 문질러도 락스 냄새보다 진한 똥내 아이구 아이구 짜고 짜내는 걸레질마다 지청구가 서말이다 내 똥가루 서말은 달게 드시며 웃으셨을 어머니 그깟 냄새 한 홉 맡는다고 성질 부리던 못난 치사랑 그렇게 삐툰 투정 서말은 드시고 돌아가셨다 거친 역정 서말은 젖내처럼 달게 드시고 떠나가셨다 후회 한 되 눈물 한 말 그리움 한 섬 똥가루 서말 오월의 외상값 치르는 때 늦은 불효 뒤늦은 참회의 서말값은 어찌하랴 내 피와 살을 짜고 짜내도 영원히 갚지 못할 치부 어찌하랴 어찌하랴 손바닥만 한 가슴꽃자리 영영 잃은 나를 - 김주탁 - - 카네이션 달아 드릴 가슴 없어 더욱 가슴 저린 어버이날! 2019. 5. 7.
질경이꽃 질경이꽃 쥐와 새가 만났다 굴을 파고 숨어 사느니 날개를 달고 세상을 날겠다던 쥐는 새와 은밀한 거래를 하였다 새는 비행의 자유를 나누어 주는 대신 허공의 반에 대한 상호 불가침을 주고받다가 이분할 수 없는 하늘을 고민하였다 어리석은 세상이 입을 다문 사이 둘은 절묘한 협약 하나를 주고받았다 새가 둥지로 날아가며 어둠을 끌고 왔고 박쥐는 새가 버린 밤하늘에 날아올랐다 그것들이 낮밤으로 쪼아 먹던 집채만 한 탐욕의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리 질경이 꽃이 피고 있었다 밟혀도 밟혀도 꺾이지 않는 풀 몸을 일으켜 하얀 꽃이 피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나는 꽃 질경 질경 피었다 - 김주탁 - -질경이 꽃말은 발자취다. 민중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고 싶은 풀이다 2019. 5. 6.
꽃의 눈물 꽃의 눈물 전에 보았던 목련의 순결한 개화 이번에는 또 다른 모습이외다. 알만한 시인들이 꽃이 이렇고 저렇고 언어의 바다를 항해하지만 나에게 꽃은 굳어 버린 혀가 되어 버렸네 기쁨처럼 환히 웃던 나무 연꽃이 너 없이 피어나 환히 우는 꽃 꽃은 눈을 버리고 나는 눈을 감고 서로를 본다 꽃은 절로 피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아픔을 견디는 진통이었네 너를 잊으려던 짓이 그러하였지 어느 외진 시간의 정거장을 지나며 떠나간 사람을 얼굴하는 길에 꽃도 눈물을 뚝뚝 흘리더이다 가랑거리는 봄비에 뚝뚝 빗물로 소리 없이 울더이다 - 김주탁 - 2019. 5. 5.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산에서 만난 사람은 산이 되고 바다에서 떠나보낸 사람은 바다가 된다 열차에서 마주 앉은 사람은 서로의 종착까지 잠시 열차가 되고 살다가 헤어진 어린 풋사랑 하나쯤 나직한 그리움의 배경이 된다 사람과 사람은 따끈한 차 한잔의 향기처럼 서로에게 남을 수 있다면 미움의 옷을 다 벗어 보라 눈물의 옷까지 벗어 보아라 나는 가끔씩 부끄러운 알몸을 드러내고 사랑하는 너에게 간다 살다가 사람에게 사람이 되는 일 사람이 사람에게 사는 이유다 - 김주탁 - 2019. 5. 4.
고향유정 고향유정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는 덜 검어 보인다더니 매화리 지나 자구티 넘어가는 길섶에 손톱만 한 풀꽃도 이쁘기만 하네 살아온 길을 되돌아가다 보면 사람의 세월만 시끄럽게 부스럭거리고 옹이 같은 기억들이 빼꼼거린다 평산리는 내 첫 울음점이다 억만 겁 시간의 연이 뒤섞여 오다가 몽고 낙관을 찍히며 내가 발아한 곳이다 밥보재 걷어 낸 싸리 광주리의 들 밥처럼 소담한 고향의 표정들이여 길은 멈추지 않고 노각같은 허리를 틀어 금강 쪽으로 굽어 나가고 봄날은 처녀의 젖가슴처럼 간지럽다 이별의 경계에 이르면 봉긋한 묏등에는 할미꽃이 피려고 애써 막 피워 내려고 꽃은 뿌리의 탯줄을 끊어 내고 있다 애틋한 삼월의 산문이 시작되고 고향에는 고향에는 포근한 유정만 남아 가슴속에 섬이 되고 있었다 - 김주탁 - 2019. 5. 3.
옥천역에서 옥천역에서 내 고향은 한반도 가운데 속의 한가운데 바다가 없는 내륙의 영토를 살았다 산과 들과 강으로 펼쳐 놓은 땅에서 통금이 없던 아비의 고된 시절은 보리쌀 같은 까칠한 가난을 섬겨 왔으니 푸른 금강의 이마에 사금파리 같은 별이 뜨면 야금야금 어미의 가슴이 쑤셔오던 밤 봉숭아 꽃잎 한장 한장 짓이겨져 무명실에 묶인 누이의 손톱을 붉게 먹었다 유리창에서 자라나던 손풍금 소리의 꿈아 꿈의 꿈속을 배회하던 어린 얼굴들아 시간의 저울은 점점 기울어져 가고 꽃잎 하나 떨어지는 소리가 쓰러지는 역 눈물의 심장에 박힌 그리움의 자궁에서 경부의 열차는 사탕 같은 별들을 매달고 입 다문 차창의 가슴을 덜컹거리며 플랫폼에 들어 오고 있었다 - 김주탁 - 2019. 5. 2.
신록 신록 꽃눈은 꽃을 밀어내고 꽃은 잎을 끌어 올리던 운동회처럼 떠들썩했던 사월의 할례여 파발마처럼 달려오는 오월이 허공에 서서 휘적거리는 푸른 숨소리 저 잎 하나 바람에 흔들리기까지 저 잎 하나 햇살에 반짝이기까지 저 잎 하나 싱그러운 음표가 되기까지 사람의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나무는 뿌리에서 울고 또 울었다 - 김주탁 - 2019. 5. 1.
처지 처지 중부 이남은 종일 비가 내리고 서울 경기 동해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니 너에게 전화 하면서 우산 얘기는 하지 않았다 내 입에서 나간 젖은 말들이 케이블을 상행하다가 수원쯤 지나며 바짝 말라 버릴 음색들 아니면, 하행하다가 젖을 너의 변음들 너도 양산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 좁은 땅에서 말이다 - 김주탁 - 2019. 4. 30.
거미의 눈물 거미의 눈물 날줄을 긋고 씨줄로 획을 치며 끈적한 갈망의 그물을 펼쳐 놓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걸려들지 않는 먹이 배 속에 우글 품은 씨알들 악착으로 밀어낼 기운도 없어 배고파 죽을 지경까지 참고 참다가 기다림의 본능도 미친 듯 버리고 내려와 날마다 들려오던 내 배설의 발치에서 시인의 눈물처럼 말라 죽었다 - 김주탁 - - 사월비와 똥간의 단상 2019.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