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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영상.방송]/김주탁의 일詩일作145

SF 시나리오 SF 시나리오 갑자기 단전 단수 단유가 된다면 나는 좋아라 춤을 출 것이다 깜깜한 세상, 별을 보며 살 것이고 접촉사고나 신호위반 대신 서로의 어깨를 부딪히다가 호형호제하며 가까워질 것이고 너의 안부를 묻기 위해 편질 쓸 것이고 목마른 놈 먼저 샘물을 팔 것이고, 지나는 아무개에게 선뜻 바가지물을 내어 줄 것이고 정말 네가 보고 싶을 때, 서너 날쯤 맘 잡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너에게 달려가리라 부둥켜안고 아무 길바닥이나 나뒹구리라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이기지 못해 별빛 달빛 내린 박주의 술로 만취하리라 제발, 지진이나 홍수나 전쟁으로의 단절로 우리의 목줄이 비틀리지 않기를 나는 먼 별나라 이야기였던 공상 과학 시나리오를 아이에게 신나라 들려주었다 - 김주탁 - 2019. 6. 15.
노을 노을 당신은 처음에 그렇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언덕 위에 노을이 내릴 때 당신의 마음은 꿈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언덕 위에 노을이 내릴 때 당신의 이름이 헛된 세월이란 것도 뒤늦게 알아 버렸습니다 사람을 살다가 알아 버렸습니다 - 김주탁 - 2019. 6. 13.
우설 편육 우설 편육 일소의 혓바닥처럼 고단한 부처가 또 있었을까 멍석만 한 혀를 쑥 빼어 내밀고 부글거리는 입거품이 코뚜레까지 엉키고 시린 우골을 지게 작대기처럼 짚어 가며 힘써 갈아 넘기던 전답의 힘줄들 첫닭 울며 잔별 지는 새벽이면 물안개 오르듯 무럭거리는 쇠죽 김에 호수 같은 눈망울 껌벅거리며 음메 으으음메 긴 밤의 숨소리들에게 몸 울음 하였다 백열등 켜지는 연푸른 어둠 끝에서 손하품 하던 여자 통나무 구유에 여물 가득 쏟아 붙듯 사내의 국 사발 대접에 한 국자 더 퍼 담던 시루 콩 나물국 소나 사람이나 한 식구였던 아득한 통절히 깊게 패인 내 이마 고랑을 채워 오고 할아버지 뒤따라 하늘 밭으로 떠난 그 일소 잘 삶아진 우설 편육 한 접시 앞에 두고 깡소주만 들이키다가 사람 혀만 이랑처럼 꼬부라졌다. - 김.. 2019. 6. 13.
선영이 선영이 선영이는 지하 다방 레지였다 덩치는 크고 어린 것이 남달리 순수하고 촌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층 고시원에서 만난 우리들은 가끔 중요한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면 지하에 내려가 차 한잔과 엽차로 서너 시간 죽 때리고는 하였다. 아주 가끔 그녀의 매상을 위해 커피 몇 잔을 추가로 팔아 주기도 하였다 그녀는 차 배달은 하지 않았다 일 층에 대걸레 빨러 올라올 때 만나거나 어찌 마주치거나 하며 오빠 동생 사이가 되었을 때 나는 그녀의 눈썹 라인이나 립스틱 색조를 빈정거리며 놀려 대다가 꼬집힘의 응징을 당하기도 했다 어느 날 그녀의 배가 점점 불러오더니 이내 다시 쑥 꺼져 버렸다 술 한잔 하면서 듣기로는 젊은 동거남의 벌이가 시원치 않아 지워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생일이 내일이었다 마침 단풍이 .. 2019. 6. 11.
꼬막을 씹으며 꼬막을 씹으며 한 뼘을 기어가기 위해 한 모금 짠물로 썰뻘을 버티기 위해 한치의 깊이 속으로 박히기 위해 작은 것들은 몸부림쳤을 것이다 목숨을 걸기도 했으리라 한점 바다의 작은 이력을 씹으며 아, 너도 너를 산다고 발버둥 쳤을 것이다 어금니를 악물기도 했으리라 끓어 오르는 민물에 쩍쩍 입을 벌리고 쓴 술맛의 희석을 위하여 쓴 살맛의 흔들리는 중심을 위하여 쫄깃거리는 속을 뺏긴 빈 껍질들이 탁자 위에 수북 쌓여 갔다 - 김주탁 - 2019. 6. 10.
오르막에서 오르막에서 오르막 산길을 멈추어 서니 나무도 풀도 자세히 보였다 새소리도 똑바로 들렸다 멈추어 앉아 있으니 지나가는 구름의 모양도 보이고 바람 소리도 시원히 들렸다 힘들 때는 잠시 쉬어 가고 볼 일이다 산을 깔고 앉아서 말이다 - 김주탁 - 2019. 6. 10.
어머니의 총각 어머니의 총각 - 옥천 꽃동네에서 다가갈 수 없는 퇴행의 섬 울컥 속 삼키는 눈물의 피는 고들빼기 맛이 나기도 한다 건너오는 흐린 눈빛에 억장 무너져 건너가는 안부의 자음 목 가시로 찔리는 나는 오십 먹은 총각이다 달빛 꺼진 묵지의 바다 새까만 머릿속에서 총각이었다 보세요 며느리 이쁜 며느리 수십 수백 번 귀 못 박아 드려도 수천 수만 개 옹이진 가슴에 헛 박히고 불러 보세요. 아가 착한 새아가 수십 수백 개 귀 못 빼내 드려도 죽기 전에 여의어야 하는 데 너 하나 여의고 가야 할 텐 데 수천 수만 번 삼킨 응어리에 겉돌고 꿈속에서나 다시 말해 드릴까 꿈속에서나 참던 눈물 보일까 둘 같은 셋으로 햇살 한 줌 붙잡고 나와 깜부기처럼 씹혀 대는 기억들 솎아내는 휠체어와 한몸 되신 어머니 바퀴따라 걷는 매화리.. 2019. 6. 10.
상팔자 상팔자 개가 되어 살고 싶네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씻겨 주고 색색 옷도 입혀 주고 때때로 미용실도 가고 조금만 아파도 아무런 걱정 없이 병원도 제집 들락거리듯 치료받는 안방 개로 살고 싶네 길을 가다가도 대변도 냉큼 받아 주고 걷기 싫으면 가슴 품에 편히 안겨 들이며 산이며 실컷 구경 다니는 상팔자로 살고 싶네 견공으로 한평생 호사 호락 하다가 나이 먹어 떠나가는 날 지 애비 에미 죽었을 때보다 더 많이 울고 더 깊이 슬퍼하는 영혼이 쓸쓸한 사람들은 그 먼 민들레 장례식장까지 찾아와 꽃다발이며 사진이며 편지까지 온갖 뒷사랑을 들이 받치고 잃어버린 사람의 견연을 애통한다 저 먼 나라에는 개만도 못한 아이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 가는 일 어두운 그늘에서 어른처럼 살아가며 조금씩 눈물이 자라나는 이웃.. 2019. 6. 8.
싸리꽃 싸리꽃 겨울 옷가지를 봄물에 헹구고 느릿느릿 시리고 저린 손심 모아 빨래를 짠다 몇 해 전 다 태워 버렸던 영감 옷들도 줄줄이 선 하나에 헛것으로 널렸다 산골 깊짝한 풀길 따라 봄꽃은 이름도 없이 소곤소곤 거리고 월남 꿈속에서 불쑥불쑥 쫒아 나오던 젊은 아들의 가벼운 골분상자 싸릿대 줄기마다 씩씩했던 웃음이 하얗게 피었다 싸리꽃은 그렇게 까맣게 늙은 속을 찢고 나와 하얗게 하얗게 몇 날을 흐드러지고 꽃의 향기는 눈물을 짠다 - 김주탁 - - 설날, 경산시 금호강변 매화꽃을 보며, 월남전에서 전사한 아들의 어머니! 대공초소 근무 시절에 보았던 먼 촌막에서 빨래하시던 할머니가 오버랩 되었다 봄날 대민 지원 나가면 홀로 사시던 할머니, 그리고 초소 오르는 길에 싸리꽃의 하얀 반란들! 2019. 6. 8.
파장 파장 논은 논이고 밭은 밭이다 벼는 벼고 보리는 보리다 옥천 오일장 서는 날 버스는 뚱뚱한 보따리들을 거두어 가고 벼는 논에 남고 보리는 밭에 남았다 팔고 팔리는 시끄러운 난장 젊던 세월까지 모두 떨이치고 나면 하늘에는 눈부신 별장이 빼곡 들어섰다 모정이란 헐값에라도 팔아치우는 일 빈 보따리 둘둘 접고 떠나가는 일 파장을 싣고 돌아온 버스가 서고 몇몇 삐걱거리는 늙은 서러움들만 숨을 차며 내렸다 사람의 시간도 불쑥 파장하는 법 그 시리고 따뜻했던 모정은 어디서 누구에게 살꼬 - 김주탁 - - 금구천에서 옥천 숙모님의 노고를 나직이 떠올리며 2019. 6. 7.
민들레 꽃 민들레 꽃 그때가 스물 몇이었나 한강 다리에서 첫 키스를 하였어 우리는 두 손을 맞잡고 별빛 반짝거리는 강물을 내려다보았지 나는 아폴리 네르의 미라보 다리를 청음으로 읊어 주었지 `우리의 사랑도 강물처럼 흐르고~' 너는 종알거렸어 어머, 이 노란 꽃 좀 봐! 작은 크렉에 뿌리를 박고 강바람에 민들레 꽃잎은 마구 흔들거렸어 어쩌다 삼십 년쯤 흘렀나 돌아오지 않을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잘못 내린 용산역에서 힘에 부칠 노량진으로 일부러 걸어가다가 그때 그 다리에 피웠던 꽃 한참을 찾아보았네 - 김주탁 - 2019. 6. 7.
동백꽃 동백꽃 - 선운사에서 선운산 술집에 앉아 봄 술의 취기는 한 여자를 벤다 구겨진 풋 정을 술끝으로 베는 것은 사라진 그 사랑의 눈물을 베는 것인가 눈물은 술에 베인다 베인 눈물은 술잔에 뚝뚝 떨어지고 꽃도 아픈 사랑을 하는가 향기를 버리고 제 속을 찢는 꽃 무엇하러 붉은 내 눈물 훔쳐 피는가 암술도 술이라고 수술도 술이라고 잔뜩 섞어 마시고 사람의 사랑보다 더 붉게 취해 버리는 동백꽃이 참 좋다 - - - - - 살다가 살다가 당신을 잊고 살았습니다 잊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허튼사람의 사랑을 살았습니다 동백꽃 붉게 피어 당신이 흘리던 눈물을 얼른 일러바치면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도 못하고 동백꽃 가슴에 미칠 듯 주저앉아 동박새 목청처럼 엉엉 울어 버렸습니다 - 김주탁 - - 선.. 2019. 6. 6.
이슬의 꼬심 이슬의 꼬심 젊고 독한 내 여자가 있다 내 어리숙함을 사랑하는 여자는 나의 낡고 고루한 교감에 싫증이 난 듯 끓어 오르던 뜨거움도 몇 도 식혔다 오늘도 너는 나의 빈 틈을 꼬시고 나는 너의 수액을 꼬드긴다 내 혀끝은 깨진 노른자처럼 혼미해지고 하얀 망각의 온도를 숨긴 너는 홀짝홀짝 있는 대로 속을 내주고 있다 문밖에는 꽃잎이 성큼 피려 하는 데 젊은 내 여자여 젊고 뜨거운 도둑괭이 같은 여자여 도깨비 같은 봄이 또 오는구나 후회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어 제 발등을 쿵쿵 찍으며 절룩거리는 밤 내 심장은 엇박자로 뛰고 창백한 씁쓸함은 쏟아진 잉크처럼 번진다 멀쩡한 사람은 내 여자를 모른다 지폐보다 날카로운 여자여 내가 알고 있는 네 꼬심의 뻔한 이유를 막잔에 따라 놓고 한숨의 주름을 꼬집어 보았다 백치처럼.. 2019. 6. 6.
시간의 블랙홀 시간의 블랙홀 벽걸이 시계가 죽었다 자살과 타살의 중립을 지나 한시에서 멈추어 버렸다 남은 잔류를 끝까지 삼키고 바둥거리며 너도 경계를 버리고 싶었나 보다 0과 12의 모호한 의심을 피하려 했을까 나는 며칠 동안 시계의 사체를 걸어 두고 시간이 두들기던 건반의 부재를 즐겼다 시침을 거꾸로 돌려가며 아쉬웠던 과거로 돌아가는 꿈도 꾸었다 그동안 저놈이 내 시간을 얼마나 끌고 다녔는가 또는 떼밀고 하였는가 놈의 침묵은 무성의 반격이었다 하루하루 지나며 답답해지는 것은 오히려 내 쪽이 되었다 건전지를 갈아 끼워 주며 부활의 신성을 흉내 내던 귓가에 착각 착각 시간을 갉아먹는 시침 소리 우주의 박동을 조각하는 소리 생명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는 소리 망각의 웃음소리, 이별이 걸어가는 소리 때가 오면 놈 앞에서 사.. 2019. 6. 5.
가로수 가로수 아랫도리를 내리고 참고 참았던 참음의 방뇨가 멋쩍어서 툭툭 너를 치면서 껄껄 웃었다 참 잘 살아 냈구나 참 참 잘 버티고 있구나 유배의 땅, 블럭의 유폐 속에 갇혔어도 네 몸의 기울기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푸르게 취할 줄도 아는구나 가로의 조연으로 알음알음으로 커가며 나무도 길을 산다 나무도 나무의 길을 살고 있었다 - 김주탁 - 2019. 6. 5.
풀 소가 풀을 뜯고 있다 쇠 등에 파리가 앉아 탐식중이다 모기가 날아와 쇠파리의 피를 빨고 있다 풀의 피를 빨고 있다 풀은 주검으로 돌아온 녀석들을 풀뿌리로 빨아들이고 있다 붉고 뜨거운 피는 차갑고 푸른 엽록의 변환이었으니 그 엉킨 순환의 에너지가 햇볕과 비와 바람과 시간의 교감에서 자란 풀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 김주탁 - 2019. 6. 3.
폐역 폐역 떠나가는 사람이나 돌아오는 기척 하나 없는 폐역 화단 꽃들은 저절로 만발하고 깨진 창문 너머로 나 모른다 횡횡 지나가는 무정차 언젠가 떠나간 사랑 하나를 기다리던 내 아팠던 쓸쓸함처럼 이별을 폐한다 - 김주탁 - 2019. 6. 3.
쑥 언 땅의 냉 속을 품던 쑥 뿌리는 따사로운 볕의 수다에 밑동이 근지러워 윗마을 처자 지나가는 길에 묻지 않아도 대답하네 듣지 않아도 소리 없이 소리치네 양지바르고 바람 잘 통하는 곳이면 봄꽃 피지 않아도 좋아라 풀물 오르는 묵은 줄기마다 연푸른 고운 예단이 풀풀 돋아나고 아랫마을 어여쁜 처자여 너의 하얀 손은 언제 다가오려나 불쑥불쑥 쑥이 쑥 쑥 나오네 - 김주탁 - 2019. 6. 2.
씨발 씨발 월말 마감은 고질적인 압박이 되었다 술기운이라도 있어야 버틸까 한잔 걸치고 길을 걸어가다가 불쑥 나를 묻는다 딱 한 말만 뱉고 적자에서 떠나가라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씨발! 그 말밖에 생각 안 났다 산다는 것이 꼭 쌍욕 같을 때도 있지만 딱 한 번 살다가는 일에 대하여 입까지 더럽힐 수 있겠는가 씨발부터 고쳐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발 하라는 말이 꼬부라진 혀끝에서 나도 모르게 자꾸 씨발 씨발 한다 - 김주탁 - 2019. 5. 31.
십원짜리 십원짜리 길을 가다가 십원을 주웠다 지나가는 발길들에 밟히고 채이기도 하던 단추만해진 동전을 주워들고 횡재했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는 것이 그냥 서글펐다 골목길 쓰레트집 구멍가게로 어린 나와 더 어린 동생과 청백군처럼 앞다투어 달려가 눈깔사탕 하나씩 얼른 집어 들고 `여기요!' 꼭 쥔 조막손을 펼쳐 건네던 구리빛 그 십원짜리 거지 같은 세상이 흘려 버리고 줍지도 않는 옛 동화 속 노란 화폐여 - 어른들을 위한 동시 #45 - 김주탁 - 2019. 5. 30.
생일날 아침에 생일날 아침에 해마다 그 날의 아침이 오면 나는 나에게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가 미역국 한 그릇 더불어 먹고 어제보다 푸르게 다시 시작해 보라는 배꼽 박힌 날이 아닌가 남에게 나를 전부 덜어 주라고 서로 다른 차이는 모두 덜어내라고 떠나갈 때는 내버리고 가는 날 향기로운 축언들이 부끄러운 아침에 덜컥덜컥 씹힌다 - 김주탁 - 2019. 5. 29.
오타의 달 오타의 달 글자의 점 하나가 서로를 혼란하게 하고 신융장 숫자의 콤마 하나가 자사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첫 직장의 실무가 되었을 때 퇴근 후 북창동 포장마차에 앉아 손바닥만 한 돼지 주물럭 연탄 구이와 소주 한 병이 모두 오천 원 어치인 계산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에서 딱 오천 원어치의 스트레스를 찢어 버렸었다 가끔 마천루에 걸린 달을 볼 때면, 수 없는 오타의 하루가 휘청거리는 길 보름이 되기까지 살이 오르며 둥글어지는 저 달에서 품어지는 온유의 패러독스 삐끗하는 일은 바로 서기 위한 용서라고 내가 네가 되게 하던 달나라의 오타들을 노랗게 분사하고 있었다 - 김주탁 - 2019. 5. 28.
고래 고래 배 한 척 보이지 않는 먼 수평선 위로 둥실 오른 작은 섬에 분수 하나 뭍을 떠난 포유의 그리움인 듯 덩그러니 떠 있다 - 김주탁 - * 포유 - 어미가 제 젖으로 새끼를 먹여 기름 2019. 5. 27.
파리도 팔자대로 산다 파리도 팔자대로 산다 중앙로 삼계탕집에 사는 파리는 윤기가 좔좔 흐르고 통뚱했다 대패 삼겹살집에 살던 파리도 기름기가 좔좔하니 뚱통했다 그놈들에게도 팔자가 있었을까 파리 날리는 식당에 살던 파리는 파리해진 파리가 되어 어쩌다 손님이라도 들어 오면 얼른 테이블 위로 날아가 머릴 조아리고 죽어라 두 손을 비벼대는 것이었다 어서옵셔! - 김주탁 - 2019. 5. 27.
무제 무제 혈관의 표적에 달려들던 거머리가 흡반을 붙이고 철썩 달라붙는다 징그러운 환형의 적아 너는 붉은 피를 승리하였구나 배부른 봄을 살아 보았구나 무논 밖으로 던져져 따가운 햇살에 화형을 당할지라도 목숨 걸고 달라붙던 패기가 좋았구나 성질 난 발바닥에 싹싹 비벼지고 짓뭉개져도 빨판만은 꼭 오므린 채 뜨거운 피의 맛을 뱉지 않았다 짧던 삶의 후회란 것도 모르고 오월 한번 절절하지 못한 이름들에게 너는 검은 투사처럼 살다 가는구나 - 김주탁 - 2019. 5. 27.
포란 포란 스물 한날 정도 종란을 품다가 병아리를 열 마리나 부화시킨 어미 닭에게 새끼 수가 몇 마리냐고 물으니 나는 숫자를 포란한 것이 아니라고 꼬꼬댁 꼬꼬댁 대꾸하며 날개로 가슴을 두드리며 홰를 쳤다 참 별꼴이 반쪽일세 훗날 토종닭 백숙이나 매콤한 닭새탕이 될 놈들을 품에 가리고 사람의 어미처럼 거친 부리를 세운다 새끼를 품는 것들은 세상에 다 어미다 - 김주탁 - 2019. 5. 24.
제 3 한강교에서 제 3 한강교에서 무취업으로 졸업이 가까웠던 즈음에 천 가지 만 갈래 생각을 이고 지고 한강교를 걸어갔다 다리 건너 술집에서 천만 가지 생각들을 퍼마시고 일어나 돌아오던 다리 한가운데에 서서 흐르는 밤 강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한참 동안 거센 물줄기를 보다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노랠 불렀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아아 제 3 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 나를 두고 홀로 흘러가 버린 꿈아 다리 밑에는 또 다른 새 강물이 흐르고 남아 있는 꿈 부스러기라도 있을까 늙어가는 나이를 뒤져 보았다 - 김주탁 - 2019. 5. 23.